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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엔진 정상인데 남쪽 연안불빛 보며 내려와…월선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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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소형 목선이 갑판과 어창에 오징어잡이를 위한 어구 등을 실은 채 해군에 예인돼 28일 오전 강원도 양양 군항에 정박해 있다. [사진 제공 = 합동참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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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밤 어둠을 틈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해 넘어온 북한 목선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군 합동조사에서 북한 선원 3명은 '항로 착오로 NLL을 넘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해군 고속정이 해당 선박을 발견했을 당시 마스트(갑판에 세운 수직 기둥) 끝에 흰색 수건으로 보이는 천이 달려 있었다. 해상을 통한 탈북 전례를 감안할 때 하얀 수건은 귀순 의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묻자 북한 선원들은 "일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군 관계자는 귀순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단순히 옷가지를 걸어놓았던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에 타고 있던 3명 가운데 1명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인원이 군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참 관계자는 전했다. 합참은 해당 목선에 군 식량 조달 역할을 하는 '군 부업선'임을 알리는 표식이 있었으며, 북한 소형 목선에 군 부업선으로 추정되는 고유 일련번호로 된 표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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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선박이 NLL 북쪽에서 최초 발견됐을 당시 주변에 다른 북한 조업선이 없었던 상황도 의문이다. 합참은 "북한 소형 선박을 예인한 이유는 육군 레이더에서 NLL 북쪽에 있던 이 선박을 최초 발견했을 때 주변에 다른 북한 조업선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NLL 북쪽에 단독으로 있다가 일정한 속도로 정남쪽을 향해 자체 기동으로 NLL을 월선했다"고 밝혔다.

북한 오징어잡이 배들은 오징어 성어기인 5월 말~7월 중순까지 조업 활동을 하는데, 어선 한 척이 바다에 홀로 나와 있는 모습은 흔치 않다. 올해 동해에서 NLL을 넘어 불법 조업을 하다 적발돼 퇴거 조처된 북한 어선은 380여 척(5월 31일~7월 14일 기준)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 40여 척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올해 동해 NLL 일대에 오징어 어장이 형성된 것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해 NLL 인근에서는 북한의 오징어 조업 어선이 식별되지 않고 있다.

또 목선이 위치했던 곳에서 GOP(전방초소) 선상 경계등이나 연안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항로 착오'라고 이야기한 점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 약 10m의 이 목선은 엔진을 기동해 남하했다. 앞서 우리 군이 해당 선박을 향해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을 때 이 소형 선박 역시 불빛으로 응답했다.

군의 경계작전 당시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었으며 현재까지 북한 측의 송환 요청 등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당국이 곧바로 예인 조치를 한 것도 북한 어선들의 단순 월선에 대해 퇴거 조치로 통상 대응해왔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다만 북한 선박들이 수산물을 늘리기 위해 낡은 목선 등을 동원해 무리하게 조업에 나섰다가 동해상에서 기관 고장 등으로 표류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북한은 동해안 일대 군부대 산하에 수산사업소를 설치해 어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사업소들은 군 소속이지만 민간인들도 참여해 조업에 나서고 있다. 북한 군 부업선도 식량 조달 등을 위해 활용되는 상황이다. 북측 공식 매체에 따르면 동해안의 수산사업소들은 군부대에 공급되는 수산물 외에도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보육원) △각급 학교 △양로원 등에 들어가는 물고기들을 잡고 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내각경제 소속으로 어업 활동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데 대체적으로 군이 동원돼 어로 활동을 하는 비율이 높다"면서 "민수경제의 경우 유류 등의 제약 때문에 어로 활동이 크게 늘지는 않았던 반면 군 소속 수산사업소에서의 활동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군 수산사업소 소속 인원들의 어로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어로 활동을 할 때 군복을 작업복처럼 입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감안하면 어업 종사자가 군복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정식 군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승선인원에 대해서는 기초조사가 끝난 후에 동해 1함대에서 지역합동조사를 정밀 진행 중이다. 승선인원에 대해서는 현재 12개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지역합동정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군은 해당 선박이 북한군 부업선으로 추정되나, 바다에 홀로 나와 있던 어선이 남쪽으로 기동한 점 등을 감안해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전반적으로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민 숫자가 매년 1000명 안팎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목선을 타고 동해를 통해 탈북해 직접 한국에 입국하는 인원은 늘어나고 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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