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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시신 수습·폭탄 처리로 돈 모아 독립 자금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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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 선생 차남 장자크 홍푸안씨

경향신문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 선생의 차남 장자크 홍푸안씨가 지난 16일 프랑스 생브리외 자택에서 부친이 남긴 기록물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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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버님의 살아생전 꿈이었습니다. 유해라도 모셔 갈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450㎞ 거리에 있는 브르타뉴주 생브리외시.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 선생(1898∼1960)의 2남3녀 중 차남인 장자크 홍푸안씨(77)가 부친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홍씨는 다음달 한국의 광복절을 앞두고 부친의 고국인 한국을 방문한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부친의 유해를 안고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기 양평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재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위험에 처하자 만주와 영국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에 입국했다. 그는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타국에서 폭탄을 수거하고 시신을 닦아 모은 돈을 고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그는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유해는 파리 근교 북서쪽에 위치한 콜롱브시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독립운동과 관련한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 홍재하 선생의 구체적인 삶의 궤적은 사후 60년에야 조명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최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6일 생브리외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홍씨는 “뒤늦게나마 아버님의 희생을 인정해주고 높이 평가해준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홍씨는 부친이 남긴 서신과 임시정부 자료 등 독립운동 관련 유품 240점을 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에 기부했다. 그는 “부친이 세상을 떠나신 후 누나가 보관해오던 부친 유품 300점 가량을 2006년부터 제가 보관해왔고, 이 중 부친의 친필편지 등 개인적인 서신 60점을 제외한 모든 기록물을 전했다”고 말했다.

국내 활동 중 위험에 처하자

1919년 고생 끝 프랑스 도착

정착 후엔 ‘재법한인회’ 결성


홍재하 선생이 남긴 유품엔 러시아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기록,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사실을 알리는 ‘독립신문’의 호외본 등 학계가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 기록과 홍씨에 따르면 홍재하 선생은 1919년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의 도움을 받아 한인 34명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온 후 프랑스 최초의 한인단체 ‘재법한국민회’ 결성에 참여하고 이 단체 2대 회장을 지냈다.

말도, 음식도 낯선 타국 땅에서 생계 해결은 쉽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터라 시신 수습과 길거리에 넘쳐나는 폭탄을 치우는 것이 주된 일거리였다.

홍씨는 “아버님은 시신안치소에서 시신을 닦거나 거리에서 폭탄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일을 했고, 그렇게 힘겹게 모은 돈을 고국에 보내기 시작했다”며 “그나마 일이 잘 풀려 이후 미국인 기업가 집에서 집사 일을 하면서 가정도 꾸리고 여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1960년 부친이 타계한 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홍씨는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등 사업가로 성공한 뒤 1991년 생브리외에 정착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친분이 있던 한국인들과 국내외 역사학자 등의 도움을 받아 아버님이 남긴 기록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 중앙정부의 국제무역고문 등으로 활동 중인 홍씨는 지난 12일부터 열흘간 국내 시사만화가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카툰 전시회’도 개최했다. 홍씨가 전시회 장소인 생브리외 시립미술관 대관과 지역 인사 등 섭외를 맡았고, 홍보와 통역은 한국인 김명열 교수(EMBA 대학 한국무역과 학과장) 등이 담당했다.

서신 등 유품 지난해 말 기증

건국훈장 추서 결정에 감사

광복절엔 가족과 한국 방문


국내에서는 외교부 산하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 후원을 받아 국내 언론사에서 활동 중인 시사만화가 20여명이 40여 작품을 전달하고 전시회에 직접 참가했다. 홍씨는 “현재 브르타뉴주 한불문화협회 소속으로도 일하고 있다”며 “평소에도 한국문화 관련 행사는 발벗고 나서 돕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다음달 12~28일 한국을 방문한다.

생브리외(프랑스) | 글·사진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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