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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시절일기' 펴낸 김연수 "일기 쓰기는 인생을 두 번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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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신간 '시절일기'를 펴낸 김연수 작가. 책은 개인에서 사회로 확대된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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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49)는 올해로 등단 25년째인 중년 작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청춘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40대를 지나며 시대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을 담은 산문집『시절일기』(레제)를 출간했다. 15년 전에 발표한 『청춘의 문장들』에서 오롯이 청년 김연수의 자화상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개인의 내면을 관통한 시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은 지난 10년 동안 김 작가가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대된 작가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촛불시위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주요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김 작가는 책에서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특히 2부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에서 작가는 세월호 사건을 한국 사회와 기성세대의 '완벽한 실패'로 진단한다. "결국 이런 사회밖에 못 만들어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적은 그는 "아이들이 우리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을 보고 또 보기를, 그리하여 우리처럼 망각하지 말고 어른이 되어서도 꼭 기억하기"를 당부한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문학의 역할을 묻는 글에서는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면서도 "해설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라고 적었다. 지난 25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김 작가를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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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책에 사회적 이슈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시공간이다. 주인공을 묘사하려면 주인공이 사는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자연스레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다. 처음엔 소설을 쓰기 위한 필요 때문에 시공간에 관심을 가졌는데,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는 세계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하게 됐다.

Q : 특히 40대에 쓴 글들을 묶은 이유는.



40대가 될 무렵 나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이들이 10대가 됐다. 묘하게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밀려들면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게 됐다. 책임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니까 그전과는 다르게 부조리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좀 더 잘 살 수는 없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Q : 여러 사회 이슈 가운데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세월호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에 사회가 대처하는 방식이 안타까웠다. 어렸을 때는 내가 막연히 어른이 되면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우리 세대도 실패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세월호와 관련된 글밖에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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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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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책은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답을 얻었나.



나름 답을 찾았다. 대부분 사람이 어둠 속에서 힘들게 살아간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는 권력이나 부, 명예 같은 것들의 힘이 세다. 그에 비하면 문학은 힘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은 다른 영역에서 힘을 낼 수 있다. 문학은 어두운 세계에 균열을 내서 희미한 빛이 들어오게 한다. 물론 빛 한 줄기가 별다른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데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

Q : 균열이 커지면 결국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다만, 개인 한 사람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둡고 힘들다는 면에서는 똑같은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을 다른 시선을 볼 수 있게 한다. 지옥은 지옥이지만, 지옥에서 꽃 구경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해야 하나. 그 안에서 개인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

Q :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시선이 비관적인 거 같다



전제는 비관이 맞다. 대부분 개인은 어둠 속에서 어렵게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희미한 빛도 소중하게 볼 수 있다. 만약 내가 낙관론자였다면 좋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더 잘 봤을지도 모른다.

Q : 다음 소설은 어떤 작품인가.

백석 시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백석 시인은 국가에 의해 시골로 쫓겨난 뒤 40년 동안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시인이지만 시인이 아닌 채로 여생을 살아야 했던 거다. 백석이 시골로 쫓겨난 시기가 묘하게도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어떻게 남은 평생을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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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백석 시인에 대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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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괴로움은 없나.



글을 쓰는 게 힘들긴 하지만 괴롭지는 않다. 보통 괴로움은 내가 글을 쓰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집중해서 괴로움은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24시간 글을 쓸 수 있다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좋은 상태에 있을 거 같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글 쓰는 일을 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작가라는 직업을 여러 차례 권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더라.

Q :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편인가.

작품을 쓰지 않더라도 매일 일기 형식으로 생각을 적는다. 맞춤법도 맞지 않고 감정적이고 비속어가 들어 있는 엉망진창인 글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예쁜 글들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감정에 충실한 글들이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글을 쓰고 난 뒤 프린트해 종이를 찢으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Q :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는.



시간이 지난 뒤에 일기를 다시 보면 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나에겐 절실한 문제였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던 적이 매우 많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과거의 실수를 교정할 수는 없지만, 똑같은 상황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살 수 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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