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된 한일 갈등의 시발점은 지난해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다.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춘식씨 등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하급심에서도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 이후 즉각 반발했고, 배상 이행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손해배상금을 전범기업들로부터 받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 일본 전범기업 손해배상금 받기 위한 법적 절차,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에선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과 같은 전범기업 국내 재산을 압류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1일 처음으로 일제 전범기업들의 국내 자산에 대해 강제매각절차가 시작됐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 확정판결에 근거해 압류했던 일본제철, 후지코시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면서다.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은 이날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과 울산지방법원에 각각 '일본제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피엔알의 주식 19만4794주(9억7400만원 상당)'와 '후지코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회사의 주식 7만6500주(7억6500만원 상당)'에 대해 매각명령신청을 냈다. 이 주식들은 지난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승소로 올들어 압류가 이뤄졌다.
당시 대리인단은 "강제동원 가해기업을 비롯한 그 어떤 주체로부터의 의사표시도 받은 사실이 없다. 이에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반 년이 지난 지금, 대리인 지원단은 더 이상 현금화 절차를 늦출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환가절차(압류한 주식, 특허권 등을 처분해 돈으로 찾는 절차) 시작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진행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16일 법원행정처는 "7월4일 일본제철 관련 주식의 특별현금화명령을 위한 심문서 및 국내송달장소 송달영수인 신고명령의 송달촉탁서를 접수하고 7월8일 이를 발송했으며 현재 위 서류가 아직 일본 기업에 도착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강제매각 절차가 시작되긴 했지만 아직 일본제철이 관련 심문서를 송달(소송법상 당사자 기타 이해관계인에게 소송관계 서류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법원이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서면을 보내는 것) 받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문서가 송달된 후 60일 이내 일본제철의 답변이 없으면 법원이 심문 절차 없이 매각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법원이 실제로 재산 매각을 결정하기 위해 별도 감정이나 심문 절차를 거치거나, 결정을 일본 기업들에 송달하는 등의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자산이 실제 현금화되기까진 장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제징용 등 전범기업 피해자 측의 움직임은 빠르다. 지난 23일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서 소유한 특허권 6건과 상표건 2건에 대한 매각명령신청서를 대전지법에 접수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피해자 5명에게 1인당 1억~1억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지만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국내 재산 명시신청에 대해 '각하'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앞서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지난 4월24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산명시신청을 제출했다. 재산명시신청이란 재산이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해달라고 채권자가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다. 소송에 패소한 피고가 판결에 따른 돈을 지급하지 않고, 채무자의 재산 범위를 모르는 경우 원고는 법원에 피고의 재산을 명시해달라는 신청을 낼 수 있다. 대리인단 측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 등이 이미 압류된 사실이 있으나, 지적재산권 이외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재산명시신청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등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총 5억여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 사건은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이행을 계속 미뤄왔다.
이날 법원이 피해자들의 명시신청에 각하 결정을 내린 건 '송달 불능'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류가 전달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재산명시신청에서 채무자가 법원이 보낸 서류를 받지 않을 경우 채권자는 법원으로부터 보정명령을 받고 주소 보정(수정 및 보충)을 하게 되는데, 보정을 거쳐도 송달이 되지 않는 경우 각하 결정을 받게 된다.
본래 재산명시신청이 기각·각하된 경우 채권자는 사유를 보완하지 않고 다시 재산명시신청을 할 수 없지만, 서류 '송달불능'으로 인해 각하된 경우엔 채권자의 귀책사유가 없었던 걸로 인정돼 민사집행법에 따라 다음 절차인 재산조회신청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조만간 공공기관·금융기관·단체 등에 미쓰비시중공업 명의의 재산에 관하여 조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 손해배상 판결 이행 두고…논쟁 계속 될 전망
일본 전범기업 측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둘러싼 법적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원에 계류된 사건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소송에 나서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의 김세은 변호사는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추가로 제기한 소송의 피해자는 31명 정도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피고가 될 일본 기업의 수도 12곳 정도로 추려지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배상 당사자인 일본 전범기업은 그 어디도 배상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 등은 '한일 양국 정부가 협상해야 할 일이며 기업이 직접 협상에 응하지는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리인단은 법적 절차를 통해서라도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기조 속에서도 일본기업들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 측은 지난 16일 열린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전범 기업으로부터 협의를 하겠다는 의사가 전달되면 저희는 협의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채원 , 오문영 인턴 기자 chae1@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