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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수출규제 하면서 정보공유 원하는 일본의 두 얼굴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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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2일 장관들과 함께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의결하기 위해 앉아있다. 도쿄=AP연합뉴스


일본이 2일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수출규제 품목이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되면서 한일 무역과 산업 분야 교류는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신뢰 문제를 이유로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강행한 일본은 ‘경제는 때리고 안보를 취한다’는 전략을 구사하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일 양국이 맺은 첫 군사협정으로 2016년 11월 체결된 GSOMIA는 북한 핵과 미사일 관련 2급 이하 군사비밀 공유에 필요한 보안원칙을 담은 협정이다. 효력은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되며, 90일 전 어느 한쪽이라도 파기 의사를 서면 통보하면 종료된다. 이달 24일이 연장 여부를 결정할 시한이다. 시한이 다가올수록 GSOMIA 연장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의 ‘줄다리기’와 더불어 국내 여론의 폐기 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여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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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광개토대왕함이 독도 근해를 순찰하고 있다. 해군 제공


◆‘북한 변수’에 GSOMIA 환영하는 日의 모순

일본은 안전보장상 한국을 믿을 수 없어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하면서도 GSOMIA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GSOMIA에 대해 “한일 관계가 엄중하지만 연대할 과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마자키 고지(山崎幸二)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도 “한미일 3국의 동맹관계를 활용한 지역 안보 구축이 필요하다”며 “GSOMIA는 일본 방위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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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같은 태도는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6기와 1000㎞ 거리의 탄도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는 이지스구축함 6척과 지상 레이더 4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7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보다 멀리 떨어진 지리적 특성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의 존재로 인해 일본의 정보수집자산이 북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북한 탄도미사일이 하강하면서 낙하하는 과정은 정확히 탐지할 수 있지만, 발사 직후 상승단계 추적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휴전선과 인접한 한국은 북한 탄도미사일이 발사되는 순간부터 낙하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북한 탄도미사일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려면 발사 순간부터 착탄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GSOMIA는 우리 측이 확보한 북한 탄도미사일 탐지 정보에 일본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 군도 일본이 탐지한 북한 탄도미사일 하강 궤적 등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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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상선들이 항해하는 바다 위를 비행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제공


탈북자나 북한 내부의 정보원들이 우리 측에 제공하는 인간정보(HUMINT)나 우리 군의 대북 감청정보 등도 일본이 탐내는 것 중 하나다.

일본도 북한 내부의 통신망을 감청하거나 정보 요원 등을 통한 대북 정보수집을 진행한다. 하지만 북한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일본으로서는 북한 단어나 방언 등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인 또는 간과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과의 군사정보공유는 일본 자위대와 내각정보조사실 등이 겪을 수 있는 정보해석상의 오류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얻은 정보와 자국이 확보한 정보를 합쳐 빅데이터 기법으로 분석하면, 한국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아베 정권이 ‘한국 때리기’ 기조에서도 GSOMIA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차고도 넘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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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일본의 백색국가 지정취소 관련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日 전략에 냉철하게 맞설 준비해야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 이후 국내에서는 GSOMIA 연장 거부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2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이해찬 대표가 “동북아가 이렇게 신뢰 없는 관계인데 GSOMIA가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다시 든다”고 밝혔고, 이인영 원내대표도 “GSOMIA의 실천적 의미와 유의미성에 대해 우리 당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GSOMIA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GSOMIA 연장 거부 카드를 섣불리 사용하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이 GSOMIA를 지지하면서 한미 관계의 틈을 벌리려는 시도를 도와주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측이 우리측의 GSOMIA 연장 거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GSOMIA 연장 거부 카드가 효력이 없다면 실질적인 대일 압박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상호 공유한 정보의 유출 여부 등 정보보안 관련 검증 절차를 일본측에 요구하면서 연장 여부를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의 ‘신뢰 저하’ 주장에 우리 측도 ‘정보보안’ 문제로 맞서자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자위대나 방위성에서 보안 문제는 여러 차례 발생했다. 지난 2016년 9월 자위대와 방위성의 통신시스템이 해킹당했다. 일본 정부는 해킹 사실을 공식 인정하지 않았으나 해커가 어떤 기밀을 탈취했는지 파악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해상자위대원들이 음란 동영상을 돌려보다가 미국이 일본에 제공한 이지스구축함 관련 군사기밀이 유출됐으며, 2006년에는 P2P 파일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해상자위대 호위함 암호 등 극비 정보가 새나가는 사고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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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이트리스트 배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한일군사정보보호 협정서에 폐기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밀유출 사건을 여러 차례 겪었던 일본이 우리측의 정보보안 검증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일본의 ‘보안 유지 관련 신뢰 저하 문제’를 부각시켜 GSOMIA 연장 거부에 필요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GSOMIA 연장을 결정할 때는 “군사보안 검증을 통한 신뢰 구축에 기반해 안보협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을 압박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일 관계 악화가 양국 군 간 갈등으로 확대될 우려도 나온다.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비행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동해 대화퇴어장에서 북한 어선 구조 활동을 하던 해군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5001함에 P-1 해상초계기를 저공으로 비행토록 한 뒤 “한국 해군 사격통제레이더 전자파에 맞았다”며 우리측에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올해 1월에는 세 차례에 걸쳐 우리 해군 함정에 비정상적인 저공 근접 위협 비행을 감행, 우리측을 군사적으로 압박했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한일 양국은 경제전쟁 체제로 돌입했다. 신뢰 저하를 이유로 강행한 일본의 이번 조치는 안보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일본의 경제전쟁에 동시에 대처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GSOMIA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처럼 냉철하고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려는 일본의 모순적 의도를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제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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