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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명품에 사로잡힌 10대, ‘슈퍼 브랜드’와 맞선 사상가로 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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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③ 나오미 클라인(1970~)

“자본주의 아래서 기후변화 필연”

파리협정 거부 미국 경제제재 주장

트럼프를 ‘슈퍼 브랜드’로 분석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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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에 권할 만한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고 답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인권운동가인 스콧 크리스천슨이 2018년에 낸 <세계를 바꾼 100권 책>의 마지막도 2014년에 나온 나오미 클라인의 이 책이었다. 부제인 ‘자본주의 대 기후’가 말하듯 자본주의 아래서 기후변화는 필연이므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에, 나오자마자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서라는 찬사와 함께 <뉴욕 타임스>를 포함한 세계적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자본주의, 특히 대기업 재벌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지 ‘세계’에서 유일한 예외가 한국이라고 볼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전혀 충격을 주지 못했다. 클라인은 <포린 어페어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사상가 중 여성으로서는 수위를 차지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인기가 없다.

“우리 내면의 트럼프가 문제”

클라인 자신이 충격을 받고 쓴 책이 있다. 바로 ‘트럼프의 충격 정치에 저항하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얻는 법’이라는 부제의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다. 클라인은 트럼프의 등장이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초래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문제는 백악관의 트럼프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트럼프”라는 것이다. 그 책의 특징은 클라인이 1999년에 쓴 최초의 책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에서처럼 트럼프를 슈퍼 브랜드로 분석한 점이다.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부동산 브랜드 전략으로 성공한 트럼프가 교활한 이미지 정치로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궁극의 슈퍼 브랜드까지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 뒤 그것은 세계 각국에서 유행병처럼 퍼졌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가장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한국이야말로 상품 마케팅만이 아니라 정치나 문화마저 브랜드로 가치가 결정되는 곳이 아닌가? 심지어 노이즈마케팅까지 정치를 지배한다.

클라인은 트럼프 집권 전인 2007년에 쓴 <쇼크 독트린>에서 트럼프의 등장을 예언했다. 이 책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각종 충격을 조작하고, 즉 규제와 복지의 해체에 의한 경제 충격, 화석연료 강화에 의한 기후 충격, 이민과 이슬람 억압에 의한 안보 충격을 만들고, 그 충격을 이용한 친기업주의의 강요로 결국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미국만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이런 참사편승형 자본주의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클라인은 1970년에 태어난 유대계 캐나다인으로, 부모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1967년 캐나다로 이주한 미국의 히피족이었다. 클라인은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어머니에게 반항하여 정치를 거부하고 각종 명품 브랜드에 사로잡혀 소비주의에 젖어 십대를 보냈다. 그런 경험이 뒤에 브랜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토론토대학 재학 중에 발생한 페미니스트 여학생 살해 사건을 계기로 진보적인 사회관을 갖게 되어 학생신문 편집장을 지냈으나 중퇴하고 잡지사에 취직했다. 29살인 1999년에 쓴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로 브랜드 지향의 소비자문화와 대기업의 운영을 공격하면서 세계화 반대의 선봉에 섰다. 이어 2002년 <장벽과 창문>에서는 빈곤과 부정을 낳는 자본주의를 버리자고 주장했다. 이 책은 2018년에 쓴 <낙원을 둘러싼 투쟁: 재해자본주의에 맞선 푸에르토리코>와 함께 우리말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클라인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가령 2004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 정부 주장과 달리 이라크에 시장경제를 세워 이라크의 부를 모두 외국인이 착취하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자본주의 세계화의 충격에서 민주주의를 지켜 시민의 삶을 개선한다는 이유로 지지했다. 2008년 가자 전쟁이 터지자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을 지지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냈듯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봉쇄를 저지하자고 주장했다. 이듬해에는 가자지구를 방문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사과하면서 이스라엘 언론을 비판했다.

2009년 이래 클라인은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춘 환경 문제에 집중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 가지 원칙인 공공영역의 민영화, 기업의 규제 완화, 소득세와 기업세의 감축은 환경보호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금융 위기와 기후 위기의 뿌리가 기업의 무한탐욕인 점에서 같다고 하면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환경운동에 동참하기를 촉구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판했고 조국인 캐나다를 ‘기후범죄자’라고 비난했다. 2011년 백악관 앞에서 시위 도중 체포되기도 한 클라인은 2016년 트럼프가 파리협정 준수를 거부하면 미국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자는 국제 캠페인을 요청하는 등, 세계환경운동 실천의 선봉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 요청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설령 알려졌다고 해도 미국을 신주처럼 모시는 사람들에게 미국 제재 주장은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결합

숱한 투쟁 경험에서 나오는 클라인의 글은 생동감을 주지만 단순한 르포에 그치지 않고 방대한 학제적 조사와 연구의 결과이면서도 누구나 읽기 쉬운 글이어서 그야말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이상적인 결합인 클라인의 책들은 모두 100쪽이 넘는 엄청난 인용 자료에 모두 700~800쪽에 가까운 방대한 책이지만 그야말로 소설처럼 읽힌다. 이는 저자의 지독한 노력의 결과다. 가령 10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쓰기 위해 4년간 광고문화에 대한 집중교육을 받았고 스스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고 표현한 경제경영서들을 끝없이 읽었으며 관련 상점을 찾아다녔다. 게다가 브랜드에 관련된 모든 회의나 마을을 찾아다니고 영화 등 수많은 자료들을 섭렵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두꺼운 책을 사보지 않아서 클라인의 책이 인기가 없는 것일까? 외국의 대학, 공항, 거리에서 클라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클라인의 책은 어둡다. 온몸을 휘감는 각종 명품이 각종 광고로 유혹하고 지천에 스타벅스 등이 즐비한 브랜드 사회를 거부하기 힘들다. 브랜드 상품의 생산 이면에는 엄청난 노동착취가 존재하지만 브랜드를 거부할 수 없는 우리는 그 착취의 공범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것은 기후변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부정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런 현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꿀 정도로 근원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령 화석연료에 근거한 중앙집권적 경제에서 지방분권적 재생가능 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포함하여 자본주의의 성장신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출판 10주년을 맞아 쓴 서문 마지막에 인용한 구술역사가 스터즈 터클의 다음 말을 가슴에 새기자. “희망은 절대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항상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른다.”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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