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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집행위원장 방은진 "금강산 폐막식 불발됐지만 의미있는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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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개막…강원도 첫 국제영화제

북한영화 상영, 평양도심 VR 체험 등

"평창·원산 영화제 동시 개최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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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나선 배우 겸 영화감독 방은진을 7월 30일 신문로 에무시네마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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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얘기가 나온 건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때에요. 남북한이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꾸리고 교황이 ‘전세계 평화올림픽’이라 언급해주시면서 무드가 상승했죠. 강원도만이 표방할 수 있는 ‘평화’란 유산을 잇고자 했습니다.” 오는 16일 강원도 평창‧강릉 일원에서 닷새간 개막하는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방은진(54) 집행위원장 말이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1994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으로 스크린 연기 데뷔, ‘오로라 공주’ ‘용의자X’ ‘집으로 가는 길’ 등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해온 그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2년 전 출범한 강원영상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토대부터 함께 닦아온 게 인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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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스페셜포스터. [사진 평창남북평화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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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제가 강원도와 아무런 연고가 없다”며 “오래 전부터 부산 이전을 추진해온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올해 없어지면 서울과 가까운 춘천‧원주 쪽에 세트장 첫 삽을 떠 한국영화에 조금이나마 공헌하려 강원영상위 일을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다. 영화제를 저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가 오실 때까지 작게나마 길을 터놓으려 한다”고 밝혔다.



"북한에 관한 국내 최대치 영화제"



강원도가 여는 첫 국제영화제다. 이사장엔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이 취임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발족한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서다. 갓 출범한 총예산 17억원 규모의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제지만, 한국 영화인들이 주도하는 남북한 영화교류의 민간창구로 주목받는다. 이번에 합류한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남한에서 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최대치 영화제”라 설명했다. 아직 북한이 공식 참여 의사를 밝혀온 적 없으니 반보의 출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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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최를 추진해온 방은진 강원영상위원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사진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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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저희가 하지만 언젠가 뒤따라 와주겠죠.” 이렇게 말한 방은진 위원장은 이번 영화제에 거는 기대를 내비쳤다. “독일도 베를린장벽 붕괴 전부터 베를린영화제가 동서 간의 문화적 차이를 낮추는 역할을 했잖아요.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아티스트, 대중이 공감하는 축제의 판을 벌여보고 싶습니다.”



개막작…철새 덕에 상봉한 이산가족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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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막작에 선정된 북한영화 '새'. [사진 평창남북평화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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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평화 주제로 선정한 33개국 85편 상영작 중엔 최초 남북합작 장편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2005) 등 북한 영화도 포함됐다. 개막작은 국내 최초 상영되는 북한 감독 림창범의 1992년작 ‘새’. 한국전쟁 때 헤어져 남과 북에서 각기 조류학자로 활동하던 부자가 연구하던 철새로 인해 서로 생사를 알게 되는 가족영화로, 올해 90세인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와 그 아버지의 실화가 토대다.

평양 시내를 비롯한 북한 명소와 백두산 풍광, 주민 실생활 모습을 360도 VR(가상현실)로 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싱가포르 사진작가 아람 판이 2013년부터 직접 북한에 가 작업한 영상이 바탕이 됐다. 개성공단의 10여년을 담은 전시, 북한 촬영 경험이 있는 외국 영화인들의 토크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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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남북한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 [사진 평창남북평화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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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폐막식 개최는 불발



올해 상영되는 북한 영화 중 가장 최근작은 ‘산너머 마을’(2012)이다. 남북 정세상 426만화영화촬영소 애니메이션 등 최신작을 수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기획한 금강산 폐막식 개최, 북한 영화인 초청도 불발됐다.

방 위원장은 지난해 문 이사장이 노무현재단을 통해 10‧4선언 기념행사에 방북하고, 북한 유소년축구단이 강원도를 찾았을 때 등 북측에 여러 번 초청 의사를 밝히며 비공식적으로 긍정적인 기류를 읽었다고 했다. 올해 초 하노이 북미회담부터 북측 반응이 급속히 냉각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해 화해무드 속에서 여러 계획을 세웠죠. 북에서 영화를 찍자, 김정일 영화수장고를 열자, 이만희 감독의 ‘만추’같이 남측에서 유실된 필름을 찾아보자…. 갑자기 ‘시계’가 멈춘 게 하노이 직전부터예요. 강원도와 현대아산이 계획한 금강산 폐막식 등 모든 구상이 어그러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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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 신성일과 문정숙 주연 영화 만추(1966). [사진 조희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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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저희 프로그래머들이 북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통해 팩스로, 북에 가는 인편을 통해 초청 편지도 숱하게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북 피란민 출신 극우셨죠"



그런데도 그는 “언젠가 평창과 원산에서 영화제를 동시·확대 개최할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저희 부모님이 다 평안남도 분들이에요. 외가는 지위 높은 국군 집안이라 트럭으로 다 피란 오셨죠. 돌아가신 저희 아버진 이북에 동생을 두고 오셨어요.” 그가 자신의 가족사를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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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1996)에 출연한 방은진. [사진 박철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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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극우셨죠. 실향민으로 혈혈단신 피란 오셔서 철도고등학교 나와 박정희 정권 국비 장학생 1호로 해외유학을 가시고 새마을운동 모자를 평생 쓰고 다니셨어요. 저는 극과 극을 다 보고 자랐어요. 강원도도 접경지역이라 여전히 보수적인 인식이 강하죠. 그럼에도 전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민족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부분에서”라고 강조했다. “북은 기술‧자본이 필요하고 우리는 일자리, 그들의 자원이 필요하잖아요. 그것들을 강대국들이 선점하기 전에 남북교류가 이뤄져야 앞으로 세대가 더 잘 먹고 잘살 근간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당장 처한 현실부터 ‘평화’란 말에서 남북을 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제도 존재하는 것이고요.”



'쉬리' 보고, 경포대서 강형욱 '댕댕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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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도 이번 영화제에서 대형 스크린에 상영된다. [사진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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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제에선 남북 분단 이슈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돌아본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부터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지난해 ‘공작’까지 39년에 걸친 흥행작 여섯 편을 상영한다. 반려동물‧가족과 함께 강릉 경포대에서 비무장지대로 향한 유기견들의 여정을 그린 애니 ‘언더독’을 보고 ‘개통령’ 강형욱과 만나는 ‘댕댕런’ 행사도 영화제 기간 열린다.

영화제를 치르고 나면 그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에 우정 출연할 계획이다, 또 시나리오 준비 중인 연출작도 기다린다고 그는 귀띔했다.

“사실 저한테 과분한 일을 하느라 좀 고갈돼있는 상태거든요. 본연의 모습으로 재충전해야죠. 영화제가 이후로도 잘 가려면 첫걸음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겸손하고 순박하고 꽉 찬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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