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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한일 경제전쟁]화평법, 주 52시간…여전히 ‘산더미’인 넘어야 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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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급한 규제 완화 없고, ‘교과서적인 정책’ 만

- 유기적 연결된 세계 경제 속 ‘완전 자립’ 가능 의문도

[헤럴드경제=도현정·이태형·이세진 기자] “당면한 포위를 뚫기 위한 전술이라기보다 근본적인 전투력 강화를 위한 장기 계획에 가깝다.”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에 대한 학계, 재계 전문가들의 총평이다. 정부가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내놓은 ▷대대적인 R&D 투자 ▷M&A 인수자금 및 세제지원 ▷유망 중기·스타트업 양성 등에 대해 전문가들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과서적인 대책’이라 평가했다. 당장 “6개월 이상 버티기 힘들다”(6월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최대 감내 기간은 6~8개월”(7월 벤처기업협회 조사)이라는 현장의 불안감을 타개할 ‘묘수’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적의 핵심은 규제 완화가 빠졌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특히 R&D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면서 일괄적인 주 52시간 적용에 큰 변화가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주52시간 근무제는 R&D 업종에 족쇄 중 족쇄”라며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비상체제에 총력한다고 밝혔으면 자금을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기업들이 소재·부품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R&D로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1년, 5년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이는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기업들로서는 수입처 다변화가 더 현실적일 것”이라 꼬집었다.

그간 소재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았던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의 ‘패스트 트랙’ 적용도 일시적, 제한적이어서 규제 완화로서의 효과가 적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기초 화학소재에 대한 규제 완화 등 보다 현장감있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이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한다기보다 국내 기업환경을 전체적으로 개선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해외 M&A 추진이나 기술 도입은 그동안 지원책이 없었는데 세제 지원 신설이나 신성장동력 R&D에 대한 부분도 추가하는 등 전체적으로 산업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대책이 ‘백화점식’에 가깝다보니 선택과 집중에 소홀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안정성을 확보한다고 했는데, 어떤 품목이 들어가는지에 따라 바라는 지원도 다를 수 있다”며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날 대책에 대해 중기업계에서는 우선은 환영과 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술을 개발해도 그 동안 사용해온 외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관행 때문에 판로가 없어 난감했던 중기들이 많았는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그 동안 안정적인 공급이나 브랜드를 이유로 기술력이 비슷한 국산 제품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는 품질이 보장된다면 국내 부품 기업들을 육성해야할 이유를 산업계가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라고 반색했다.

그러나 기업의 입지, 활동 반경에 따라 국적을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된 추세를 감안하면 산업 안보를 내세워 국산화를 추진하는게 무리라는 지적도 공통적으로 나왔다.

강성진 교수는 “근본적으로 ‘자립’이라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이고, 완전히 자립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도 없다”며 “글로벌 밸류체인 안에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병행해야 한다는 것 정도”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역시 “협력관계 단절로 인한 대체재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글로벌 가치사슬로 복잡하게 얽힌 세계 경제 네트워크 속에서 산업안보를 이유로 모든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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