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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정부 ‘피해자 중심’ 강조하더니…징용 피해자측 “접촉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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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대책 지연” 국회 추궁에

노영민 “피해자와 협의하느라”

피해자 측 “1+1안 동의한 적 없어”

“정부, 사법거래 의식해 태도 모호”

한·일 갈등의 시작점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이후 대응과 관련, 6일 국회에 출석해 “가장 심혈을 둔 부분이 피해자 설득이었다. 피해자들과 (대책과 관련해)발표해도 될 수준의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대책 마련이 늦어져 이 사태까지 왔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에서다.

외교부는 지난 6월 19일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한 외교적 해법으로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안을 일본에 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노 실장 말을 감안하면, 피해자들과 협의를 거쳐 ‘합의안’으로 ‘1+1’안을 내놓았다는 게 된다.

실제 일본의 화이트 국가(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 결정이 난 2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외교부가 6월 발표한)한국 정부의 대책 마련이 왜 8개월이나 걸렸느냐”는 질의에 “피해자들의 변호인들과 만나서, 피해자들이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 측은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입장이다. 2000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최봉태 법무법인 삼일 변호사는 5일 “피해자 누구와 접촉했으며, 정부의 ‘1+1’안을 피해자들이 동의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최 변호사는 대한변협의 일제피해자 인권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일본 정부도 가해 책임이 있는데 외교부 안에서는 양국 정부의 역할이 빠져 있다”며 “이를 포함한 협의를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했어야 했는데 (배상판결 이후)8개월간 방치해 일본의 약을 올렸고 이게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해 온 청와대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들 중에는 반드시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금 명목이 아니어도 일본 정부와 기업의 진정 어린 사죄가 있다면 (화해금 형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기류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도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금은 아니지만 ‘사죄의 증거’로 명시해 (화해금을)지불하라고 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신일철·미쓰비시 대리인단(‘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단 및 지원단’)은 앞서 6월 정부 대책 발표 때도 “한국 정부가 피해자·대리인단 등과 구체적인 안에 관한 공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유감”이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피해자들과의 협의를 적극적, 공개적으로 하지 못한 배경에는 ‘사법거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안 마련을 주도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외교부는 6월 대책 발표 때 “피해자들과의 직접 접촉(협의)은 없었다. 사인 간 문제여서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게 확고하다”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6일에도 “향후에도 외교부가 (피해자와 협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외교부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단서를 달았다.

정부의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해 전직 고위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사법 절차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사법거래의 틀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묶고 있기 때문”이라며 “완결된 사법 절차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외교적 파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정부가 공개적으로 모든 피해자 단체로 확대하면 사안이 더 복잡해질 수 있어서 지난해 대법원 판결 원고단에 한정한 대책을 우선 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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