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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소설로 ‘인종차별 반대’ 희망 남기고 천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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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첫 노벨 문학상’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 별세

경향신문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이 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모리슨이 199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 그가 교편을 잡고 있던 프린스턴대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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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이 지난 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모리슨의 유족은 6일 “5일 저녁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존경받는 어머니이자 할머니, 이모였다. 죽음은 슬프지만 우리는 그의 삶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모리슨은 미국 뉴욕의 몬테피오르 병원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모리슨은 말했다. 흑인이자 여성인 모리슨에게 자신의 소수자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읽고 싶은 책’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했다. 대표작 <빌러비드> <가장 푸른 눈> <재즈> <술라> 등은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또 잔인하고 섬뜩하게 들려주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들었고, 문학적 성취 못지않게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았다. 작품 다수가 미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대표작 <빌러비드>는 오프라 윈프리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모리슨은 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다.

1988년 출간된 <빌러비드>는 모리슨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성적 착취와 모성애 박탈까지 겪어야 했던 한 여성 노예가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 미국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39세 때 다소 늦은 나이에 쓴 데뷔작 <가장 푸른 눈>은 아버지에게 강간당하는 등 불행에 빠진 흑인 소녀가 푸른 눈을 갖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통해 백인 중심의 미적 기준의 강요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1992년 발표한 <재즈>는 1920년대 뉴욕 흑인 하층민의 삶과 욕망을 그린 수작으로 이듬해 노벨 문학상 수상에 영향을 미쳤다.

모리슨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그렇게 많은 백인이 백인우월주의라는 이름 앞에서 인간성을 내던질 준비가 돼있다니”라고 분노했고,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트럼프는 흑인에게 아파트를 임대하지 않은 회사의 주인이고, 선거 유세 때 흑인 인권운동 박해에 대해 침묵했던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모리슨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오바마는 6일 자신의 트위터에 “토니 모리슨은 미국의 보물이었다. 모리슨의 글은 우리의 도덕과 양심이 가진 상상력에 아름답고 뜻깊은 숙제를 남겼다”며 “모리슨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인가”라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모리슨의 작품은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로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비견되기도 했다. <빌러비드> 등 다수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한 최인자 번역가는 “흑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인간 삶 자체의 슬픔, 인간에 대한 연민 등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냈다”며 “현대 미국 소설 작가 가운데 모든 면에서 한계를 뛰어넘은 뛰어난 작가”라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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