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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경복궁과 근정전 이름에 담긴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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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경복궁 근정전


1395년 9월 29일 조선의 궁궐 경복궁이 완성됐다. 1394년 10월 한양 천도를 단행하고 12월 공사를 시작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궁궐의 규모는 전체 755칸 정도로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검소와 절약 정신이 반영돼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했다. 정도전은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할 것을 건의했다. 태조가 궁의 완성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술잔이 세 번 오간 것에 착안해, ‘시경’의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君子)는 영원토록 그대의 경복(景福: 큰 복)을 누리리라’는 대목을 인용한 것이었다. 정도전은 또한 ‘춘추’에서,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 했다면서, 왕이 된 자는 넓은 방에서 한가히 거처할 때에는 빈한한 선비를 도울 생각을 하고, 전각에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되면 맑고 그늘진 것을 생각해 본 뒤 만백성의 봉양하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민본사상의 구현이 새 왕조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을 언급한 것이다.

정도전은 중심 전각의 이름을 근정전(勤政殿)으로 정했다. 그리고 ‘서경’에 나오는 대목을 인용하며 왕이 이를 수용해 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 그는 “편안히 노는 자로 하여금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든가, “주나라 문왕(文王)은 아침부터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을 갖지 못해 만백성을 다 즐겁게 했다”면서, 부지런하게 정사를 베푼 성군의 사례를 소개했다. 부지런할 ‘근(勤)’ 자를 넣은 것은 왕이 이를 잘 계승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마침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내부 시범 특별관람을 21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한 달간 매주 수∼토요일에 진행한다고 한다. 경복궁과 근정전의 이름에 담긴 뜻을 알고 이곳을 탐방한다면 조선왕조 첫 출발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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