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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위기의 예보법] ①표류하는 착오송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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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3조4000억원.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예금이 늘고 있다. 더욱이 간편결제 간편송금 등 모바일을 활용한 거래가 확대되며 거래량도 증가하는 상황이다. 예금자보호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서 잠자고 있는 착오송금·예금자보호한도·계좌추적권 등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전문가들의 찬반의견을 들어본다.

#. 몇 개월 전 A씨는 스마트폰으로 현금을 송금하던 중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 외국인 계좌로 송금했다. 다급해진 A씨는 은행에 연락했지만 수취인이 자국으로 출국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현재 A씨는 무료민사상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을 방문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연락처를 확인할 수 없어 잘못 송금된 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송을 하려 해도 송금액보다 변호사 수임료가 더 많이 들어 포기한 상태다.

엉뚱한 계좌로 돈을 잘못 보내는 착오송금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모바일을 이용한 금융거래가 늘면서 착오송금 비중도 증가하고 있는 것.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5년 착오송금 사례 중 74%가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에서 발생했다. 모바일을 이용한 금융거래 범위가 확대될수록 착오송금 비중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권 착오송금 건수는 2017년 9만2469건으로 2014년(5만7097건) 대비 3만5372건 증가했다. 금액은 2017년 2385억원으로 2014년(1452억원) 대비 2배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처럼 착오송금이 늘고 있는데도 돌려받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다는 것. 현행법 상 잘못 송금된 돈이라도 원칙적으로는 수취인의 예금으로 판단, 수취인의 동의 없이 착오송금자에게 임의로 돈을 돌려줄 수 없다. 2017년 미반환 건수는 5만2105건으로, 절반 이상(56.3%)이 착오송금액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윤민섭 박사는 "착오송금을 방지하기 위해 송금 시 수취인 정보확인이나 지연이체 서비스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모바일 금융거래량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착오송금에 대한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며 "단순히 송금인과 수치인 간 분쟁이더라도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메트로신문사

착오송금 구제사업 개요/금융위원회·예금보험공사


◆ 예보, "착오송금액 80% 먼저 돌려주겠다"

예금보험공사는 착오송금시 구제절차를 마련할 수 있도록 예금자보호법(예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송금을 잘못할 경우 송금은행 콜센터를 통해 반환청구절차를 진행한다. 송금은행이 수취은행에 반환청구를 요청하면 수취은행은 수취자에게 사실 안내를 하고 자금반환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송금은행이 요청하더라도 수취자가 자금 반환에 동의하지 않으면 돌려받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소송을 통해 돌려받는 방법도 있지만 1000만원 이하의 소액은 소송비용이 더 들고, 수취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면 소송을 진행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예보는 1000만원 이하의 소액 착오송금자의 채권을 80% 수준에서 매입한 뒤 소송절차를 거쳐 수취인으로부터 착오송금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개정안을 마련한다. 예보가 우선 송금자에게 송금액의 80%를 돌려주겠다는 설명이다. 단, 착오송금을 한 지 1년 이내이고 송금액은 5만원부터 1000만원 이하일 경우만 가능하다.

예보 관계자는 "착오송금과 관련해 전문가와 논의한 결과 제반비용(20%)을 제외한 80%를 보상하는 방안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채권비율 논의는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6개월 이내 시행령이나 예금보험위원회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메트로신문사

5년간 착오송금 거래 현황/금융위원회


◆ "수취인이 안 돌려주면 세금 낭비 아니냐"

그러나 일각에서는 개인의 실수로 발생한 착오송금을 국가의 세금으로 처리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착오송금액의 80%를 먼저 돌려주고, 수취인으로부터 돈을 회수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곧 예보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착오송금액이 100억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회수율은 44%(44억)이기 때문에 예보가 80억(80%)에 매입하면 36억원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송금인의 단순 실수로 발생한 착오송금을 무조건적으로 구제할 경우 송금인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금인과 수취인이 이득을 얻기 위해 돈을 송금한 후 착오송금이라고 주장할 경우 예보가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홍기 교수는 "송금액이 큰 경우 수취인이 반환을 거부할 가능성은 더욱 커져 회수율이 더 낮아질 수 있다"며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기보단 별도로 수익을 관리할 수 있는 독립채산제를 운영하거나, 송금액이 큰 경우에는 변호사에 채권회수를 위임하는 등의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유리 기자 yul115@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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