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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시원한 공연장에서 보내는 문화 바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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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하려 다양한 시간대에 열리는 공연도 늘어



경향신문

서울시민연극제에서 공연된 시민극단 연극의 한 장면. / 서울연극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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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강윤태씨(46)의 부업은 ‘배우’다. 굳이 따지자면 아직 첫 무대에도 오르지 못해 연습생에 가까운 경력이지만, 올해 여름휴가를 연습실에서 불태운 뒤 9월이면 막이 오를 연극무대에서 훌쩍 성장한 기량을 뽐낼 생각에 기대가 크다. 일반 시민들의 연기를 지도하며 공연도 올리는 극단에 들어가 틈틈이 연습한 성과를 보일 기회가 곧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마침 아이들이랑 애들 엄마가 방학 동안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다녀오기로 해서 이번 여름휴가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는 강씨는 “휴가 기간 동안 열심히 연습실에 나온 덕에 연기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더위도 직장 스트레스도 한순간에 잊게 된다”며 웃었다.

장마가 끝나고 예년의 더위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공연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휴가철이 겹치는 8월은 공연계에선 비수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평일에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상품들이 선을 보이고 공격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할인혜택도 늘어나면서 여름철 특성에 맞는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찾는 발걸음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강씨처럼 관객이 아니라 스스로 무대를 장식하는 주역이 되어 연습실에서 색다른 바캉스를 보내는 시민들도 있다.

서울시민연극제, 시민극단 17곳 참여

8월 17일 개막하는 서울시민연극제는 보통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극단 17곳이 참여해 열린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우고 생업으로 삼는 배우와 스태프 대신 지역주민들이 만든 문화예술 공동체들이 창작 또는 고전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동안 참여하는 극단은 늘었고 구성원들의 폭도 확대됐다. 서울시민연극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정상철 전 국립극단 단장은 “다양한 시민단체가 모여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최연소 8세부터 최고령 81세까지 참가하는 등 더욱 폭넓은 연령대의 시민들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서울의 각 자치구에서 나온 실버극단, 주부극단, 직장인극단 등 다양한 극단이 돌아가며 매일 한 편씩 공연을 선보인다. 폐막식에서는 이렇게 무대에 오른 작품들을 심사해 수상작을 결정하기 때문에 연극제에 참가한 극단 구성원들뿐 아니라 관객들도 어느 극단이 더 나은 공연을 선보이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시민극단 입장에서는 값진 여름휴가까지 포기하고 땀흘린 연습의 결과를 관객의 환호로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다. 지춘성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바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연극을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축제”라며 “이번 연극제가 개개인의 삶에 활기를 되찾는 휴가 같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문화활동에 매진해 직접 공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더워서 만사가 귀찮은 여름에 더욱 손쉽게 ‘문화 바캉스’를 즐기려면 시원한 공연장을 찾기만 하면 된다. 특히 폭염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시간대와 공간을 활용하는 공연도 늘고 있다. 서울 성북구 대학로에서 창작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재개관한 뒤 첫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한양레퍼토리씨어터의 낭독극 페스티벌 <HY READING REPERTORY>는 여름 기간 동안 수·목요일에는 오후 3시 공연을, 금·토요일에는 오후 10시 공연을 배치했다. 평일 저녁 공연이 대부분 오후 8시를 전후해 열리는 것과는 달리 가장 기온이 높은 시간대에 공연을 배치해 관객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게 한 것이다. 반대로 심야까지 활동할 수 있는 주말을 앞두고는 기온이 낮아지는 심야공연을 통해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했다.

이 페스티벌에서는 공연 시간만 다양하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공연 내용도 다르게 배치해 관객들이 고를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공연 관계자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게 제공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려 한다”며 “매일 다른 공연을 상연하는 데일리 레퍼토리 시스템은 관객들의 취향은 물론 신인 작가들이 여러 장르의 창작작품을 실험하고자 하는 의도도 충족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각 지자체, 비수기 맞아 다양한 할인혜택

문화예술 인프라가 집중돼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지역의 관객들은 지자체 공립 공연장에서 기획하는 공연·축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각 지자체가 공연장 대관 비율이 낮아지는 비수기에 맞춰 운영하는 지역 맞춤형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여러 공연·전시·축제를 묶어 할인도 제공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다채로운 관람 기회가 생겨서 좋고 지자체는 공연장을 비워두는 부담을 줄여서 좋다.

전북에서는 도내 공연장뿐 아니라 휴가철 물놀이장이나 관광지 등에서 두루 쓸 수 있는 문화누리카드를 일종의 공연장 패스처럼 활용할 수 있다. 취약계층에게 연간 8만원을 문화예술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지만 일반 시민들도 필요한 만큼 금액을 충전해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북 외에도 시·도립 예술단을 운영하는 지역들마다 상주단체 공연이나 지자체 공연장 주최행사의 경우 무료공연으로 진행하거나 지역주민에게 휴가철 할인혜택을 포함하는 문화예술 패스를 도입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한 중소도시 지자체 공연장 관계자는 “사실 여름철 비수기에는 아동 대상 방학용 공연 대관만으로 버티는 관행이 만연해 있었다”면서도 “최근 들어서는 지방의 관객들도 다양한 공연에 대한 문화적 수요가 높아지고 각 지자체별로 경쟁적으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어서 여름휴가철이 쉬어가는 시기라는 생각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유산과 공연·전시상품을 결합한 맞춤형 프로그램 역시 여름휴가철에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리는 <석조전 음악회>는 1910년대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에서 피아노 연주자 김영환이 고종 황제 앞에서 연주했다는 기록을 배경으로 기획됐다. 경기도가 코레일 열차를 타고 비무장지대(DMZ) 앞 도라산역까지 왕복하며 DMZ는 물론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살필 수 있게 기획한 <DMZ 코리아 사진전>도 열차 안에서 더위를 식히며 역사와 문화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결합형 프로그램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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