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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권력 장악 ‘막강 386세대’ 양보해야 자녀 세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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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세대’ 출간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화제 논문 ‘세대, 계급…’ 확장판

권력 독점 부작용 데이터로 짚어내

연공임금제·정규직 노조 문제 지적

“계급과 세대가 일치하는 한국

강력한 임금피크제 도입 절실

노동시장 개혁은 진보가 할일

다른 세대와 연대해 풀어가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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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대놓고는 못하고 술자리에서만 하던 이야기를, 데이터를 근거로 보여주니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웬만한 386세대 리더들은 이 논문이나 논문을 다룬 기사를 읽은 것 같더라.”

이철승(48) 서강대 교수(사회학과)가 최근 출간한 <불평등의 세대>는 지난해 화제가 된 논문 ‘세대, 계급, 위계―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를 확장해서 쓴 책으로 출간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이 교수는 20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하며 시카고대학 사회학과에서 종신교수로 일했으나 모두 정리하고 2017년 한국에 돌아왔다.

이 교수는 386세대가 정치·경제·시민사회 권력을 장악했고, 세대 독점의 결과로 청년 세대의 일자리 부족과 여성의 노동시장 탈락 등의 문제가 발생한 현실을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보여줬다. 논문을 낸 이후 여러 반론이 나왔는데,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계급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계급론 시각의 반론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일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이 교수는 “계급론은 세대나 여성, 지역 등 다른 균열구조를 ‘핵심 모순’을 가리는 허위의식이라고 본다. 하지만 최근의 청년 실업은 계급만으론 잘 설명이 안 된다. 한국에선 독특한 위계 구조로 인해 계급과 세대가 거의 일치한 상황이다. 그래서 책은 386세대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세대라는 관점으로 한국의 위계 구조를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노동시장 불평등을 집중 거론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동아시아적 위계에 기반을 둔 강력한 연공임금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초봉이 100이라고 하면 30년 뒤엔 170까지 가는데, 일본은 240, 한국은 350까지 간다. 한국은 세계 최강의 연공급제 국가다.” 이로 인해 심각한 노동시장의 이중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비용의 압박이 생기자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했다. 강력한 노조를 조직한 386세대 정규직들과는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 대신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고 사내 하청·파견직·비정규직을 확대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규직 노조와 자본이 연대해서 하청과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다. 1% 대 99%가 아니라 20%가 80%를, 또는 50%가 50%를 착취하는 사회다.”

그는 다른 세대와 비정규직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에 몰두하는 정규직 노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은 서구 국가 노조는 자발적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한다.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규직 노조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최우선 목표가 65살 정년 연장이다. 역삼각형 인구 시대가 연공급 및 세대 네트워크와 결합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신분제처럼 될 거다. 나는 정규직의 특권을 축소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를 알 수 없다. 이 이야기를 한국의 진보 세력이 솔직하게 터놓고 해야 할 시점이 왔다.”

이 교수가 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는 이유다. “정규직을 건드리지 않는 소득주도성장은 의도하지 않게 외부자가 진입할 일자리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 소득주도성장보다 고용주도성장을 하는 게 맞다. 사민주의 국가 노조들의 목표는 완전고용이다. 그래서 임금 인상을 자제한다. 완전고용 상태에서 노동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386세대의 장기집권을 강화할 65살 정년 연장을 위해 군불을 지피고 있는 상황을 그는 우려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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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위계 구조가 기업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의 세대>에 처음 공개한 50, 60대가 과대 대표하는 기업일수록 자본수익률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를 중요한 데이터로 꼽았다. “국내 100대 기업을 살펴보니 이사진 중 50~60대 고연령자 비율이 80~100%에 이르는 기업들이 실적이 좋지 않았다. 우리은행, 대우조선해양처럼 정부가 최대 지분을 가진 기업들이다. 오너가 없는 기업들에서 한 세대가 연대해서 나눠 먹는 거다. 이런 노동자의 이익집단화와 비효율의 증대는 남미 또는 남유럽 방식인데, 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생이 20~40%까지 이사진에 포함된 회사들, 네이버·코웨이·아모레퍼시픽·엔씨소프트 등은 자본수익률이 10~30%로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충전된 젊은이와 여성들을 조직 최상층으로 끌어올려 ‘무지개 리더십’을 구성하면, 경직된 조직 문화와 장기집권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세대 일자리 문제와 관련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으로 강력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꼽았다.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 등에서 시행한 임금피크제로 절약한 인건비로 기업들이 청년들을 고용하도록 하는 고용협약을 맺자는 것이다. 동시에 급여를 직무에 따라 주는 직무급제와 성과에 따라 주는 연봉제를 약한 수준의 연공급제와 함께 시행하자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와 함께 관대한 실업보조금 지급과 재훈련 시스템, 국가 관리 취업 알선기관 등 유럽보다 더 강력한 고용과 훈련 안전망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선 386세대의 양보가 필요하다. “386세대는 다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제하자는 거다. 어차피 386세대를 몰아낼 조직력 있는 다른 세대는 없다. 권력을 가진 386세대가 자식 세대를 생각해서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거다. 노동시장 개혁은 우파가 하면 노조가 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진보가 해야 한다. 386세대 안에서도 세대 균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세대랑 연대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 취업률과 출산율이 낮아지면 나중엔 386세대 본인들의 자녀가 엄청나게 많은 노인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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