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2 (일)

`금단의 땅` 페달 밟으면…북녘땅 한눈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금단의 땅' 비무장지대(DMZ). 70년 가까이 일반인의 발길을 막았던 이곳에 지난달 23일 도로가 뚫렸다. 그것도 왕복 2차로에 자전거 도로까지 갖췄다. 그래서 도로 옆으로 길게 뻗어 있는 DMZ를 바라보며 달렸다. 급히 공수한 자전거를 승용차에 걸치고 도착한 곳은 강화도.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전거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남북 평화'를 기원했다.

이 도로의 이름은 강화해안순환도로 2공구(강화읍 대산리~양사면 철산리 5.5㎞)다. 평범한 이름과 달리 특별함이 물씬 묻어났다. 북한군과 코앞 대치 중인 강화도, 그것도 긴장감이 최고조라는 DMZ를 따라 일반인 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인천시가 '어제의 DMZ가 동서녹색평화도로로 변신했다'고 치켜세울 정도다. '대치의 섬'에서 '평화의 섬'으로 변신 중인 강화 DMZ 도로는 그렇게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강화 DMZ 도로의 시작은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연미정(고려시대 누각·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인근이었다. 북한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물길 하나는 서해로, 또 다른 물길은 인천 쪽으로 흐른다. 북한 개풍군과 파주시, 김포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 이웃한 남북 3개 도시가 섞이지 못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출발지라니 분단의 아픔이 아련함을 더한다.

도로 진입에는 아직까지 군당국의 허락이 필요했다. 연미정 인근 해병대 초소에 이름과 연락처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적고서야 출입이 가능했다. 1㎞ 남짓 더 가자 고대하던 강화 DMZ 도로가 나타났다. 폭 2m가 넘는 자전거 도로와 2차로 자동차 도로가 해안 철책을 따라 북쪽으로 나 있었다. 이곳은 도로가 나기 전 논과 밭, 습지여서 경작자 외 민간인 출입이 쉽지 않아 사실상 6·25전쟁 이후 금단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보호 헬멧을 고쳐쓰고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도로 좌측은 논에 심은 벼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녹색 물결을 이뤘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중 철책 너머로 임진강을 낀 북한 개풍군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2㎞에 불과해 손에 잡힐 듯했다. 일부 구간은 철책의 둔덕이 높아 산 전체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좌논 우산'의 풍경은 도로 끝까지 이어졌다. 5.5㎞를 달리는 내내 고요하고 평범한 농촌의 모습이 펼쳐졌다. 한 라이더는 "이렇게 평범한 곳이 수십 년간 남북 대치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었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정말 DMZ가 맞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20여 분을 달려 도로 끝에 이르자 저 멀리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가 눈에 들어왔다. 내친김에 페달을 더 밟았다. 전망대로 가는 기존 도로에도 자전거길이 나 있어 이동은 어렵지 않았다. 10여 분을 더 달려 도착한 강화평화전망대. 30여 명의 관광객이 일제히 북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시거리가 좋아 북한 개풍군, 송악산, 개성공단이 있는 개성시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경에 북한 주민의 일상이 포착되기도 했다.

관광객 중 강화 DMZ 도로 이용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망대 관계자는 "도로 개통이 덜 알려져 기존처럼 도심을 관통해 오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통 보름을 막 넘긴 강화 DMZ 도로 이용자는 평일 50명, 주말 100~200명 정도다. 이 중 3분의 1이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라이더라고 한다.

하지만 강화 주민들의 기대는 컸다. 강계운 씨(59·강화읍)는 "이번에 철책선을 따라 도로가 나면서 초지대교에서 북쪽 해안선을 타고 교동도까지 돌아볼 수 있는 자전거 도로가 연결됐다"면서 "DMZ를 질주하며 북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평화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화 = 지홍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