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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시가 있는 월요일]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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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 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한 오백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마침내 비닐 하우스 속에

온 지구를 구겨넣고 계시는,

스스로 속성 재배되는지도 모르시는

인간은 그리하여 살아도 백년을 넘지 못한다

- 이원규 作 <속도>

속도가 진리인 세상이다. 하지만 지리산에 사는 시인은 속도의 이면을 안다. 시인은 뭐 그리 바쁘다고 기껏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시간을 마구마구 당겨 쓰는 인간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들은 스스로 알찬 인생을 살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속성 재배된 인생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결국 바쁘게 산 만큼 인생도 바쁘게 지나간다.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남는 건 없다.

차라리 느리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늘도 보고, 강물도 보고, 들풀이 자라는 것도 보고. 가끔은 하염없이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도 보면서 말이다. 그러면 입가에 웃음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내 속도에 나를 맞추는 일. 중요한 일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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