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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한글 배포는 일본 덕"…가짜뉴스로 민간교류까지 막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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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1일 서울 구로구 대림역 앞에서 중국동포시민사회연대가 개최한 `일본 경제침략 강력 규탄 범민족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중국동포지원센터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이 단체는 "일본의 명분 없는 경제보복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결의한다"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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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한 국내 반발이 연일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내 일부 혐한 인사들이 한국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쏟아내며 양국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번 결정을 내린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확대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한국 전체를 비하하고 과거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슬슬 커지면서 민간 교류 단절마저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화장품 기업 DHC의 자회사인 'DHC테레비'가 최근 한국인을 비하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의 인터넷 방송을 내보낸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DHC테레비 시사프로그램 '진상 도라노몬 뉴스'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일 불매운동에 대해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라며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봐야 한다"고 말한 출연자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이 방송에 출연한 또 다른 패널은 "조센징('조선인'의 일본식 발음으로 한국인을 비하하는 의미)들은 한문을 썼는데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며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 지금의 한글이 됐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했다. 심지어 한 패널은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서는 "예술성이 없다"며 "제가 현대미술이라고 소개하면서 성기를 내보여도 괜찮은 건가요? 아니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혐한 발언을 접한 네티즌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DHC코리아가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한국에서 돈 벌면서 한국인 폄훼하는 DHC" "DHC는 한국을 떠나라" 등 DHC의 이중성에 분노한 네티즌들 댓글이 쏟아졌다.

일본 유명인사가 혐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례는 또 있다. 만화 '에반게리온'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애니메이터 사다모토 요시유키(57)는 위안부와 소녀상을 비하하는 글을 올려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9일 사다모토는 트위터에 "더러운 소녀상. 천황의 사진을 불태우고 밟는 영화. 그 지역(한국 추정)의 선동 모음. 현대예술에 요구되는 재미, 아름다움, 놀라움, 즐거움, 지적 자극이 전무한 천박함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다모토는 일본 감독이 연출한 위안부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을 보고 비난하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트워터 내용이 알려지자 국내 팬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며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불매' 선언이 이어졌다.

이 같은 일본 내부 분위기는 항의 대상을 일본 전체가 아닌 현 일본 정권으로 한정하고 건설적인 비판문화를 조성하려는 한국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이룬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아베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7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7시께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4차 촛불 문화제'를 개최했다. 폭염 속에도 거리를 가득 메운 1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NO(노) 아베' 손피켓을 들고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같은 시간 일본 도쿄 도심에서도 시민 400여 명이 모여 '반(反)아베'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선친의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재일동포와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일본인들이 참가해 야스쿠니신사까지 약 1.5㎞를 행진했다. 그러나 행렬 옆에서 우익 세력이 맞불 시위를 펼치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때려 죽이자'는 구호도 서슴지 않았다.

관련 내용이 우익 측 시각에서 보도되면서 일본인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반일 집회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각이 확대되는 상황이다. 한 일본인 네티즌은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과는 관계없이 민간에서는 심각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아닌 거 같다"며 "이렇게까지 일본을 적대시한다면 일본도 이 나라(한국)와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테니 일시적으로라도 국교를 단절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경제 문제를 놓고 양국 정부가 갈등을 빚는 것을 넘어 민간 영역에서조차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양국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일부 극소수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더 활개를 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한일 관계가 갈등으로 치닫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민간 교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일본 내 일부 극우 인사의 혐한 발언이 계속 나오는 것은 맞지만, 아직은 일본 다수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입장을 펼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대의 기자 / 김희래 기자 /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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