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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단독] 허술한 국가계약법에 조달청은 지금 소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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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과정·평가결과 둘러싸고/ 지난해 소송 230건으로 급증/ 부당 ‘계약변경’ 제어권한 없어/ 협력업체 교체 공기관 ‘갑질’/ 법적분쟁 악순환 되풀이 비판

세계일보

최근 수년간 조달청의 입찰 과정과 평가 결과를 둘러싼 각종 소송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조달청과 업체 간 법적 다툼의 주된 요인으로 허술한 국가계약법이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기관들이 중소 협력업체에 대해 ‘갑질’을 일삼으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조달청이 연루된 소송 건수는 230건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18건 줄긴 했지만 4년 전인 2015년(95건)보다는 2.4배 늘었다. 올 상반기 조달청 관련 소송 건수는 101건이다.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낸 대다수 업체는 조달청이 공공기관들의 부당한 ‘계약 변경’ 등을 감시·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조달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 선정을 의뢰하면 조달청은 기술평가 등을 통해 일순위 업체(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도록 규정한다. 공공시설 및 설비, 물품 납품 업체가 정해지면 수요기관은 협상을 통해 세부 내용을 확정해 최종계약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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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가계약법 하위법규인 기획재정부의 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에서 ‘계약담당 공무원이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을 통해 조달청에 제출한 제안서 내용의 일부를 조정할 수 있다’(제11조)고 규정한다는 점이다. 수요기관이 낙찰업체에 과도한 계약상의 변경을 강요할 때가 많은 것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입찰 참가 업체들은 수요기관들이 특정 업체만 보유하고 있는 기술규격이나 자격증 등을 갑작스럽게 요구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또 업무상 기밀인 기술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뒤 이 같은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준미달’이라며 협력업체마저 입맛에 맞는 업체로 교체할 것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은 조달청과 감사원, 법원 간의 서로 다른 판단으로 인해 2년여간 통합별관 건축공사를 지연시켜야 했다. 한은은 지난해 초 통합별관을 착공해 내년 6월 창립 70주년에 맞춰 완공을 추진했으나 차질이 빚어지면서 완공 시점이 2022년으로 늦춰졌고 그때까지 인근 건물 임대료로 매달 13억원을 내야 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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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위원들의 전문성 여부도 입찰업체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올해 조달청이 선정한 ‘대형소프트웨어사업 전문평가위원’의 절반가량은 대학교수였고 나머지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재직자였다. 실무경력이 전무한 사람들로 평가위원이 구성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고도의 전문성과 실무지식이 요구되는 시대에 현장 전문가들이 평가위원으로 위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공기관 입찰 참여업체 관계자는 “조달청에서 말하는 ICT 전문가 중에는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실무와 동떨어진 질문을 해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며 “특정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 중 오랜 경력을 겸비한 사람들을 평가위원 일부로 넣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 측은 “조달청은 협상에 의한 계약의 원칙에 따라 업체 선정만 할 뿐 분쟁이 발생해도 관여할 의무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라윤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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