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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은둔형 외톨이들](2)고립청년과 가족, 도움받을 곳 없어 ‘막막한 현실’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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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은 다른 문제 뒤편 밀려 거의 없고 실태도 파악 안돼

심리상담·정신치료 기대하기 힘들고 ‘기댈 공동체’도 드물어

고립청년 문제 이제라도 사회적 재인식, 정책 대안 마련해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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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0대 중반의 아들을 둔 ㄱ씨는 지난 10여년간 자식 문제가 늘 어려웠다. 그의 아들은 스무살 무렵 게임에 빠져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고3 시절 쌓인 입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음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방황이 길어지며 취업 시기를 놓치자 아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소위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훈계를 해보려 했지만 폭력적으로 반감을 드러내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다. ㄱ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세월을 보내야 했다.

ㄴ씨도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는 아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검색을 해봤지만 도움이 되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시간당 수십만원짜리 상담도 받게 했다. 하지만 아들은 상담을 받은 반년 동안 선생님 앞에서 입을 다문 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ㄴ씨는 “결국 사회적으로 도움받을 곳이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은 헤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ㄱ씨와 ㄴ씨의 고민은 많은 부모들에게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취업난이 수년간 계속되고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장기 백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에도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다수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회 적응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뒤편으로 밀려나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전무한 것은 물론 실태조사 역시 한번도 이뤄지지 않아 은둔형 외톨이들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립청년을 둔 가족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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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청년을 위한 심리지원 미비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진출 과정에서 심리적 문제를 겪는 이들에 대한 정신건강 관리가 중요하다. 자신감이 지나치게 떨어졌다면 상담을 통해 해소하고, 불안장애나 우울증 등을 앓고 있다면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관리가 쉽지 않다. 우선 심리상담이나 정신치료에는 건강보험 혜택이 제한되기에 시간당 수십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때가 많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이라면 선뜻 나서기 힘들 수밖에 없다. 공적 기관인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으나 상담인력이 부족해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조현병’을 관리하는 데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형편에 여유가 있어 사설 상담센터나 정신의료기관을 찾아가는 이도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인터넷에서 ‘은둔형 외톨이 부모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김지현씨(가명)는 “상담을 받고 싶어도 일단 본인을 데려오라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며 “데려간다 해도 단순히 약만 처방하기도 해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이 은둔형 외톨이 자녀의 문제를 숨기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파탄난 채 자녀 홀로 산다면 해결은 더 어렵다. 이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확인해야 하지만 복지공무원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찾는 데 한계가 있다. 치유기관 연계도 마찬가지다. 서울 한 기초자치단체의 복지행정 담당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도 지자체의 지원은 주로 금전적 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정신적 문제가 있다면 다른 기관에 연계해 해결해야 하는데, 공적인 정신건강 관리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의뢰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둔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취업을 하지 못해 사회에서 고립될 위험이 있는 이들도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 ‘공시(공무원 시험) 낭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취업성공패키지’(취성패)나 보건소의 ‘마음건강센터’ 등을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하지만 취성패는 상담사 1명이 관리하는 인원이 많아 심리적 문제가 있는 이들을 다루기에 한계가 있으며, 마음건강센터는 규모가 작아 스스로 찾아오는 소수의 인원만 돕고 있다. 노량진 마음건강센터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고시원들과 협력해 상담이 필요한 이들을 적극 발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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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할 수 있는 공동체도 없어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공동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상담이나 정신치료의 효과는 일시적일 때가 많지만, 공동체를 이루면 이들은 서로를 계속 지지할 수 있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은둔한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다양한 모임들이 생겨났다.

반면 국내에서는 고립된 이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코리아’ 측은 “한국에서도 은둔형 외톨이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아직까지 우리를 제외하고는 관련 단체가 생기지 않고 있다”며 “아마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의 모임은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들은 주로 사설 상담센터에서 의뢰인들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라 접근성이 낮다. 김지현(가명)는 “나도 예전에 은둔형 외톨이 부모들을 위한 모임을 알아봤지만 무척이나 찾기 힘들어 결국 내가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만든 ‘은둔형 외톨이 부모모임’에서는 84명의 부모들이 자녀를 대하며 겪었던 일들과 양육 방법 등을 공유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사실 공동체는 20·30대 은둔형 외톨이뿐 아니라 장년과 노년에 접어들어 사회적 고립에 빠진 계층에게도 중요하다. 이 연령대는 부모가 없고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도 끊어진 경우가 많아 타인과의 사회적 유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노년의 사회적 관계 지원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노인들의 고립을 막기 위해 경로당과 노인회 등에 의지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거나 대인관계가 미숙한 노인들은 이런 모임에 섞이지 못할 때가 많다.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 사이 노년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고독사로도 이어지고 있다.

■ 그들을 위한 일자리, 한국에선?

은둔형 외톨이들이 어렵게 삶을 바꾸려는 결심을 해도, 이들이 사회에 장기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일자리가 필요하다. 20대 초·중반에 사회적 고립에서 빠져나왔다면 다시 취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지만, 문제는 고립이 장기화된 경우다.

한국에서 경력 공백이 있는 30대 중·후반 청년들은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이는 은둔형 외톨이뿐 아니라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 이들도 마찬가지다. ‘동작구 청년일자리센터’ 관계자는 “나이에 따른 취업차별은 금지됐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분명히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또 경력 공백이 오래된 사람은 본인 스스로도 위축돼 있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 취업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그나마 찾아볼 수 있는 일자리는 ‘고스펙’ 청년층이 잘 지원하지 않는 중소기업 일자리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중소기업청년인턴십’이나 ‘사회적경제기업’ 등이 있다. 다만 이런 일자리도 충분하지 않은 데다 사회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이들이 들어갔을 때 기존 구성원들이 이들을 잘 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남아 있다. 은둔 생활을 했던 이들은 경쟁 구조에서의 스트레스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회관계가 미숙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기업들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일본에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부모들이 출자해 빵집을 세우고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운영을 하면서 자활을 돕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이런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 나이 먹고 고립된 이들 위한 고민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일할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면 이들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 가족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부모가 지원하는 돈으로 남은 생을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노쇠해지고 더 이상 돌보기 힘든 상황이 오면 은둔형 외톨이의 생활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40세가 넘은 중년 은둔형 외톨이가 60만명이 넘는데 이들을 부양할 사람이 없어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에 골몰한 나머지 ‘나이 먹고 고립돼가는’ 청년들의 문제는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청년재단’ 남기웅 매니저는 “정부가 고립된 청년들에 대한 문제를 이제라도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들 중에는 조금의 지원만 이뤄져도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리즈 끝 >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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