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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조홍식의세계속으로] 곰과 양 사이, 피레네 산맥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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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야생 큰곰 방생에 양들 떼죽음 잇따라 / 동물보호와 생업 사이 대립 갈수록 확산

세계일보

프랑스에서 곰과 양을 놓고 사람들의 싸움이 한창이다. 멸종된 야생 곰을 되살리려는 환경주의자들은 여론과 정부를 동원해 큰곰의 방생(放生)과 보호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곰을 풀어놓은 지역의 목축업자들은 양떼가 막심한 피해를 본다며 반대 투쟁에 나섰다.

유럽 산악지역의 유목(遊牧)은 수천년 내려오는 전통이다. 겨울에 평야나 계곡에 있다가 여름이 되면 산으로 가축을 이동시켜 풀을 먹인다. 문제는 깊은 산으로 들어갈수록 곰의 생활영역에 진입하는 셈이라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달 곰이 양떼를 습격해 겁에 질린 양 61마리가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지난 6월에는 같은 이유로 무려 양 250마리가 산벼랑에서 떨어져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멸종 위기의 큰곰을 대변하는 환경운동가와 양 목축으로 삶을 영유하는 주민들이 충돌하게 된 이유다.

동물 보호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곰은 프랑스나 유럽의 자연과 문화에 뿌리를 내린 역사적 보물인데 인간의 활동과 사냥으로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따라서 산악지역에 다시 곰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며 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단군 신화를 가진 한반도 사람은 쉽게 공감할 만한 논리다.

프랑스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의 큰곰은 20세기 들어 멸종했다. 피레네의 경우 2004년 마지막 ‘토종 곰’을 사냥꾼이 죽였다고 전해진다. 다만 동물보호단체에서 1990년대부터 동유럽 슬로베니아에서 들여온 곰을 방생해 새로운 큰곰 집단이 생겨났다. 현재는 ‘이민 곰’들이 40여 마리에 달한다. 동물학자들은 이들의 동족교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곰들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피레네 지역의 목축업자들은 곰의 방생에 극구 반대다. 큰곰은 러시아, 북유럽, 미국, 캐나다 등에 20만마리나 있기 때문에 멸종 위기도 아니고 프랑스에 반드시 큰곰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반면 피레네 산맥의 양 유목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모델이며 보호해야 할 유산이라고 강변한다. 아프리카의 거대한 야생동물 이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알프스나 피레네 등 유럽 산악지역의 가축 이동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광경임에 틀림없다.

또 곰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국가가 재정 보상을 해 주지만 부족하다고 말한다. 피레네 양은 고기보다는 젖으로 만든 치즈가 유명하다. 맛있는 젖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품종 개발이 중요하고 까다롭다. 그런데 곰으로 인해 떼죽음을 당하면 정부가 주는 마리당 600유로의 보상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항변한다.

소득이 걸린 문제인 만큼 업자들의 반응도 격해지는 추세다. 공공기관 자동차에 방화를 하거나 도로를 가로막고 곰의 방생을 저지하려는 물리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작년에는 주민이 도로를 차단해 헬리콥터로 곰을 날라 방생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주민들이 검은 복면을 쓰고 곰 사냥에 나서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마냥 귀여운 곰돌이 인형을 보면 큰곰이 이처럼 치열한 투쟁의 쟁점이 될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앞으로 이런 동물보호와 생업의 대립이 점차 확산될 것이다. 야생 곰을 보려는 관광객이 폭증해 주민들에게 양 유목과 치즈가 안겨주는 소득을 대체해 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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