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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고] ‘극일(克日)’ 외친다면 탈원전 철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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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전략물자 수출 통제로 촉발된 ‘극일(克日)’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일본의 상황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반일 정서에까지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는 8년이 지났지만 방사선 오염이 심각해 내년 동경올림픽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말도 나온다. 일본의 방사선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부를 떠나 일본에는 후쿠시마 사고 자체가 큰 트라우마다. 안전 신화가 무너졌고 일본 기술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런데도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는 일본을, 극일을 위해서라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 목적으로 원자력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의 원자력 기술은 미국의 큰 관심사였다. 일본 최초의 국가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는 당시 핵물질 확보를 위한 우라늄 농축, 핵물리연구에 나섰다. 전후 일본은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연구와 원전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후 10년도 안 된 1954년 원자력연구를 다시 시작하고 우리보다 12년 앞서 1966년 상업로 운전을 개시한다. 최초의 원전은 영국에서 도입한 가스냉각로였으나 곧 미국 원자로 제작사와 합작해 경수로로 전환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전에는 미국,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54기의 상용원전을 보유했다. 비등수로는 히타치, 도시바가 제너럴일렉트릭과 합작해서 지었고, 우리나라와 같은 가압경수로는 미쓰비시가 웨스팅하우스와 손잡고 만들었다. 비핵국가 중 유일하게 사용후연료처리도 하고 있다. 로카쇼에 있는 재처리공장은 연 800t의 사용후연료를 처리할 수 있다. 2018년 말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46t에 이른다.

차세대고속로 연구도 집요하다. 일본은 사용후연료에서 추출된 플루토늄 처리를 위해 일찌감치 전문 기관을 세워 고속로 개발을 추진했다. 그 결정판인 몬주 원전은 1995년 건설돼 제대로 가동도 못 하고 2016년 폐로가 결정된다. 그러나 포기할 줄 알았던 일본의 고속로 연구는 이번에는 프랑스와 손잡고 추진 중이다. 원자력연구의 기초인 연구로도 우리가 1기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경수로형, 고속로형, 가스냉각로형 등 5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연구원(JAEA)은 3000여명의 인력에 연간 1조7000여억원의 연구비를 쓴다. 인력은 우리 원자력연구원의 2배, 연구비는 4배 규모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새롭게 제정된 안전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원전 1기당 8000억원에서 1조원이 넘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최소 20%의 전력을 원자력으로 활용하려고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에너지 빈국으로 에너지안보를 위해 원자력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대중의 원자력 지지는 예전과 같지 않다. 정치권의 반대도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원자력에 대한 일본의 집념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를 에워싼 중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원자력을 국가 핵심역량으로 갖고 있다. 원전이 위험하다고 탈원전을 하자면 이들과 다 같이 하자고 해야 한다. 또한 원자력기술이 국가 위상에 주는 의미도 살펴봐야 한다. 주변은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 없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런데 정부는 탈원전을 내세워 원전해체, 방사선 등 대체 연구로 방향 전환을 말하고 있다. 산업체도 경쟁력 상실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탈원전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막상 사고를 당한 집은 고쳐 쓰겠다는데, 내 집은 스스로 무너뜨린 꼴이다. 우리는 포기했는데, 포기하지 않은 일본이 언젠가 원전 수출을 한다면, 경쟁도 못 하고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이 극일일 것인가. 60년 동안 어렵게 쌓아온 기술이고 일본도 못 한 것을 해낸 산업이다. 광복의 달에 탈원전 정책이 재고되기를 바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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