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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푹푹 찌는 한뼘방, 형벌 같은 폭염…“문 열면 주검 볼까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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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동구 쪽방 르포

50년 넘은 여관건물 들어서니

컴컴한 복도에 18개 쪽방 빼곡

무력한 선풍기는 열기만 뿜어

기력 없이 못 나가는 노인들엔

무더위 쉼터조차도 무용지물

여름엔 공사장 일용직도 줄어

쪽방마저 비워야 하는 사람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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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치솟을 때마다 정부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당부하지만, 여름이면 김현호(가명·52)씨는 집을 나서 은행, 극장을 거쳐 지하도, 공원을 배회하다 모기에 쫓겨 자정 무렵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로 매달 받는 60여만원 중 20만원을 내고 빌려 살지만, 푹푹 찌는 바깥보다 무더운 ‘쪽방’에 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배를 탔다는 김씨는 뇌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을 잃은 뒤 쪽방에 산다.

■ 굳게 닫힌 문, 비좁은 방, 무력한 선풍기

지난 8일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골목에 ‘달세방’ 간판을 내건 낡은 여관이 보였다. 일제강점기 번화가로 떠오른 북성로는 1970년대 한강 이남 최대 공구거리로 정점을 맞은 뒤 1990년대 들어 급속히 쇠락했다. 손님들이 들지 않는 여관·여인숙은 쪽방 임대로 버텨왔다. 대구쪽방상담소는 중구에 약 300명, 서구·동구 등을 더하면 800여명의 쪽방 주민이 있다고 파악하는데, 90%가량이 50대 이상 독거 남성이다.

아직 훤한 이날 오후 5시, 쪽방이 늘어선 컴컴한 복도를 따라 김씨 방으로 향했다. 지은 지 50년이 넘었다는 ㅁ여관 건물 안 18개 쪽방 중 하나가 3년째 그가 사는 집이다. 방문을 열자 1평(3.3㎡) 남짓한 공간에 웅크리고 있던 뜨겁고 습한 공기가 쏟아졌다. 한편엔 옷가지가 걸려 있고, 냉장고·티브이 같은 구형 가전제품은 열기를 더 달구고 있었다. 도난 사고가 적잖아 문조차 열어두지 못한다. 방 안엔 선풍기가 한 대 있지만, 열기를 순환시킬 뿐이다. 김씨는 “방 안이 너무 덥고 답답하지만 바깥에는 마음 편하게 오래 머물 곳이 없다. 겨울엔 옷을 껴입으며 버틸 수 있지만 여름은 옷을 벗어도 힘들다”고 말했다.

열섬 현상이 나타나는 도심 위 오래된 건물이 대부분인 중구 쪽방촌엔 에어컨이 매우 드물다. 대구쪽방상담소 장민철 소장은 “가격이 저렴한 이동식 에어컨을 설치해보려 했으나 건물이 오래돼 전기 증설이 필요했다. 전기 요금이 올라가니 주인이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력이 떨어져 창문도 없는 쪽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겐 무더위 쉼터조차 무용지물이다.

■ 방 안에서 숨지는 사람들

“밖으로 좀 나가이소.” 여관 건물 관리인 김숙현(가명·69)씨가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김씨는 닫힌 방문 앞에만 서면 두려움이 밀려든다. 숨조차 쉬지 않는 주검을 보게 될까 봐서다. 올해 7월 말에도 55살 남성이 인근 쪽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 패혈증이었으나 갑자기 세상을 떠날 정도로 건강이 나쁘진 않았다. 폭염으로 인한 초과사망(특정 원인으로 인해 평균적으로 기대되는 사망자 수를 초과하는 경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쓸쓸한 죽음은 면밀히 분석되지 못했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에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알코올중독 등 정신질환 역시 폭염이 닥치면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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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텔 안에서 쪽방살이

고속철도(KTX)가 오가는 동대구역 인근엔 중구에서 본 낡고 낙후된 건물은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모텔 안으로 들어가니, 매달 20만~30만원가량을 내고 1~2평 좁은 방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기료를 아끼고 벌레를 피하려 불을 켜두지 않는 복도를 지나, 닫힌 방문을 두드리니 중구 쪽방과 다르지 않은 주거 환경이 드러났다. 이렇게 겉보기엔 쪽방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쪽방과 다름없는 곳들이 적잖다.

사실 쪽방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다. 전국 5개 도시 쪽방상담소에서 각각 등록·관리하는 쪽방 기준도 다르다. 쪽방은 보통 일정한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내며 0.5~2평 좁은 방에 별도의 화장실·욕실·취사시설 등이 적절하게 갖춰지지 않은 주거 공간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쪽방상담소 10곳을 통해 파악한 쪽방 주민은 2016년 말 기준 6천명가량. 반면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주택 이외 거처 주거 실태조사’를 보면 여인숙·고시원·비닐하우스 등 비주택 거처에 사는 36만9천여가구 중 7만가구가 자신의 집을 ‘쪽방’이라고 여긴다. 빈민지원 단체들은 쪽방 정의가 불명확해 실태 파악이 어렵고, 정책적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가구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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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빈방이 늘어나는 까닭

여름엔 폭염에 실업까지 겹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이 아닌 쪽방 주민은 건설현장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여름에 유독 일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쪽방 공실률도 올라간다. 집에서 무더위를 피할 수 없고 소득마저 줄어드니 노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대구 동구의 경우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쪽방 용도의 모텔이 여러 곳 철거되면서 쪽방 월세가 올랐다.

쪽방 주민과 노숙인의 건강을 돌보는 대구희망진료소 박남건 팀장은 응급·탈진 환자가 속출했던 지난해에 견줘 올해는 상황이 아주 나쁘진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21∼2030년 ‘폭염 위험도’는 2001~2010년에 견줘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가난한 이들에게 여름은 점점 가혹한 계절이 되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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