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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폭염 취약층 지원한다지만…‘냉방’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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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도료 포함된 월세

쪽방 주인에게 내는 게 현실

요금 감면해도 실효성 없어

에너지 이용 단발성 지원보단

주거·소득 고려 종합 복지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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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폭염을 겪은 지난해 온열질환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공간은 집이었다.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감시체계에 신고된 온열질환 사망자 48명 가운데 15명이 집에서 숨졌다. 이들 중 9명은 70~80대 노인이었다.

사망자 15명의 주거 환경이나 가족 관계, 지병 유무, 소득 수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연구진이 올해 1월 발간한 ‘수요자 중심 맞춤형 폭염 대응방안 마련’ 보고서를 보면, 저소득층 고령자가 통풍과 단열이 취약하며 냉방 시설이 미비한 열악한 환경에서 많이 살고, 폭염을 방어할 재원도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선 ‘살인적 폭염’으로 700여명이 숨졌는데, 가장 위험했던 곳은 사회적 관계망이 약한 저소득층이 저렴한 방값을 내고 사는 민간 원룸 주거지였다. 한국의 쪽방과 유사한 주거 공간이다. 더구나 1인 가구와 노인인구 증가로 집에서 발생하는 온열질환이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한겨레

그러나 현재 마련된 폭염 대비 정책만으론 주거취약층 피해를 예방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개정되면서, 폭염·한파도 자연재난에 포함됐다. 올해부턴 ‘에너지 바우처’(이용권) 제도를 겨울뿐 아니라 여름까지 확대해, 에너지빈곤층의 전기 요금(1인 가구 기준 5천원)을 할인해 준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재단 등이 진행하는 저소득층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도 확대됐다.

하지만 실효성이 문제다. 쪽방 주민들은 매달 전기·수도 사용 비용까지 포함된 방세를 주인에게 지불한다.산업부는 쪽방 주민들이 신청할 경우 전기요금 감면분을 현금으로 환급해준다고 했지만 건물에 에어컨이 없으니 이런 제도가 곧 ‘냉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보증금 없이 월세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에겐 에어컨 설치 지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열·창호 공사 등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집주인 허락이 필요하다. 주인의 동의를 받아 주거 환경을 개선해도 세입자 권리가 미약한 상황에선 허점이 있다. 대구 ‘행복 나눔의 집’ 유경진 사회복지사는 “공사를 진행할 때 주인과 취약층으로 판단된 세입자가 장기간 해당 집에서 살 수 있게 하는 협약을 맺고 있지만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면 세입자들이 권리를 지킬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기력이 떨어진 저소득층 어르신들의 경우 무더위 쉼터까지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돼 마음의 문마저 닫아건 이들은 쉼터에 가기를 꺼린다. 무더위 쉼터에 있는 것만으로도 ‘낙인’이 찍힌다고 느낀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단기적으로 폭염이 심각한 시기엔 고령의 만성질환자들을 지역 수련원 등으로 이동시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쪽방상담소 장민철 소장은 “지역 내 주거빈곤층이 사는 건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노후화된 건물 수리와 에어컨 설치가 가능한 곳은 사회적 비용을 투입하는 대신 민간 임대업자가 방세를 올리는 것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거주가 불가능한 공간은 없애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집다운 집에서 살지 못하는 주거빈곤층은 적정한 실내 온도에서 살 수 없는 에너지빈곤층이자, 폭염·한파 등을 유발하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계층이다. 지난해 발생한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에서 보듯 모든 안전사고에 취약한 집단이기도 하다.에너지 이용비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닌 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산업부·행정안전부 등 서로 다른 부처 관할인 주거·소득 부문을 아우르는 종합적 복지 정책이 필요한 까닭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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