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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딸 “왜 하필 우리 엄마가…철없던 딸은 두려워 외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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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증언 담은 편지 공개…배우 한지민씨가 대독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을 알게 되며 울고 또 울어”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400명 몰려 시민들도 큰 관심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인 14일 오후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남산 옛 조선신궁터 앞에서 열린 서울기림비 제막식에서 소녀상을 끌어안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오전 열린 기림의날 기념식에서 배우 한지민씨가 ‘위안부’ 피해자 유가족의 증언이 담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이상훈·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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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전쟁 때 군인을 돌보는 간호사였다고 했다.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였다는 사실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을 맞아 위안부 유가족들이 엄마에게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올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기념식이 14일 오전 11시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됐다. 기림의날은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로,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식을 열고 있다.

기념식 시작과 함께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김경애·이옥선 할머니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의 부축을 받아 입장했다. 지난해 기념식까지만 해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 28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하점연·김복동·곽예남 할머니 등 8명이 세상을 등지며 할머니 20명만이 올해 기림의날을 맞았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기념식이 열린 만큼 시민 관심도 뜨거웠다.

준비된 300여석이 가득 차면서 좌석에 앉지 못한 채 행사를 지켜보는 시민도 100명가량 있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장내를 가득 메웠다.

기념식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유가족의 증언을 담은 편지가 낭독됐다. 유족들이 신원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 여가부가 두 가족 이상의 이야기를 대신 듣고 편지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김복동>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한지민씨가 편지를 대신 읽었다.

편지의 화자는 일본군 피해 생존자의 딸이다. 엄마는 1942년 17세의 나이로 일본군의 손에 끌려 고향을 등졌다. 뒤늦게 엄마가 위안부였음을 알게 된 딸은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다”며 “혹시라도 내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다”고 말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다”고도 했다.

엄마가 수요일마다 시위에 나갈 때까지 딸은 한동안 엄마의 아픔을 모른 체했다. 이내 딸은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됐다”며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편지는 엄마가 생전에 하던 말씀을 전하며 끝이 난다. 엄마는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라고 말하시곤 했다.

딸은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다”며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했다.

편지를 읽는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휠체어에 탄 김경애 할머니는 잠시 기념식장 밖으로 나갔다 오기도 했다. 일부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진선미 장관은 이어진 기념사에서 “외교, 경제적 불안감 혹은 연구라는 이유로 끝없이 피해자들의 오랜 상처를 헤집는 잔인한 행위를 멈춰야 한다”며 “이 모든 걸 넘어서 그분들과 함께해야 하는 날이 오늘이고, 내일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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