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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오래 전 ‘이날’]8월15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배임 ‘유죄’ 그러나 실형은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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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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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9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삼성SDS 파기환송심 공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남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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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15일 “삼성 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유죄”

최근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삼성바이오로직스(제일모직의 자회사)의 가치를 부정하게 끌어올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즉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순탄하게 승계되도록 삼성 측이 불법·편법 행위를 한 것인지 여부를 캐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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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장도리’


삼성의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의 역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10년 전 오늘,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또다른 사건에 마침표가 찍혔습니다. 바로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사건입니다. 법원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 승계를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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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삼성SDS는 1999년 2월 BW(신주인수권부사채) 321만6780주를 주당 7150원에 SK증권에 팔았고, SK증권은 바로 다음날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한 삼성가 4남매 등에게 10% 할증한 가격에 팔았습니다. BW는 주식을 매입할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말합니다.

당시 삼성SDS의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5~6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이재용 전무 등이 사들인 삼성SDS BW의 가격은 지나치게 낮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참여연대는 삼성SDS가 이재용 남매 등에게 헐값으로 BW를 팔아 이들을 대주주 자리에 올리고 차익을 거두게 한 반면 회사에는 손해를 끼쳤다면서 1999년 11월 경영진을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를 뭉개다시피 하면서 7년여가 흘렀습니다.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을 열면서 국면이 바뀌고, 이때부터 특검이 구성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BW 저가발행 유죄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험난했습니다. BW의 적정가격을 얼마로 볼 것인지를 두고 법원 판단이 엇갈렸습니다. 1심은 주당 가격을 9740원으로 보고 배임액이 50억원 미만이니 공소시효(7년)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았고, 2심은 정상적인 발행이라면서 배임 혐의에 대해 아예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결을 뒤집고 배임 혐의가 인정된다면서 파기환송했습니다.

결국 2009년 8월 고등법원은 삼성 SDS BW의 ‘공정한 가격’은 1만4320만원이라고 판단하고 BW를 저가로 발행했기 때문에 배임 혐의가 인정된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가 판단한 배임 금액은 227억원에 달합니다.

이때 이미 이건희 전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만원이 선고된 상태였습니다. 재판부는 추가로 유죄(배임)를 인정하면서도 형량은 늘리지 않았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집유’는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만약 그때 재판부가 범죄가 추가된 만큼 형량도 늘렸다면, 그래서 실형 처분을 하고 이건희 전 회장이 법정구속이 됐다면 삼성은 ‘편법 승계’에 대해 조금은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현재 8개월째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은 또 어떻게 끝날까요.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첫 증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공론화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꼭 기억해야할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명은 바로 고 김학순 할머니일 것입니다. 28년 전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처음으로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석상에 나와 증언을 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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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할머니는 중일전쟁 와중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처음엔 일본군을 피해 도망가면 기어코 쫓아와울면서 당하곤 했어요. 그때 내 나이 열일곱이었지요.” 그는 17~22세에 이르는 조선의 여성 5명이 천으로 칸막이를 친 방에서 하루 3~4명의 일본군을 상대한 사실, 1주일에 1회 군의관으로부터 위생검사를 받은 사실 등을 증언했습니다.

김 할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 사람들이 정신대란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것이 너무 기가막혀 증언하게 됐다” 28년이 지났는데도 일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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