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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92편] 자만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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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사업을 하면서 또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자긍심(pride)를 가지는 것은 멋진 일이다. 대부분 성공은 그런 자긍심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신과 회사가 일구어 낸 많은 결실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긍정적 의미의 감정이다.

그러나 단어를 자만심으로 바꾸면 약간 다른 의미가 된다. 자만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만 보아도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다’가 된다. 자랑하며 뽐내다라는 표현에는 과도함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경영자나 직원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기업이 있다. “저희 회사는 올해 1조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조그만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우리가 짧은 시간내에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2조를 목표로 합니다.” 이 정도 설명을 들으면 회사가 크게 성장해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후 “그래서 걱정이 많습니다. 사업 규모가 커지고 다양해지다 보니, 여기저기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예전에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이제는 문제가 되네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도 사실 두렵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 회사는 위기관리 관점에서 일단 기반을 갖추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자만심에 빠져 있는 회사들과는 다르다.

기업의 자만심이 부정적인 이유는 자만심 때문에 자사에게 발생될 많은 위기 요소들을 심각하게 보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전 같은 민감성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충족된 또는 충만한 감정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위기요소들을 찾아내고, 개선과 재발방지책을 논의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느끼게 되니 문제가 된다.

저희 회사는 고객정보보안 체계가 아주 잘 되어 있어요. 공정거래법을 아주 완벽하게 준수하고 있습니다. 갑질이니 폭언이니 하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돈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깨끗해요. 저희 대표님은 아주 신실하신 분이라 다른 기업인과 달리 문제를 일으키실 분이 아닙니다. 임직원들은 문화가 참 좋아요. 노조가 없고, 블라인드가 뭔 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업에게 고객정보보안을 이야기하고, 공정거래법을 강조하고, 갑질이나 폭언 방지책을 논의하자 하면 그 제안이 먹혀들 리 없다. 현재 잘 되어 있는 데 더 이상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 강하다. 임원들은 다른 기업의 유사사례를 보면서도 저 회사와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기 회사를 잘 몰라 그런다고 한다.

경영자를 비롯해 전체 임직원들이 가져야 하는 이상적 위기관리 관점은 일단 기업은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완벽 하려 노력은 하지만, 절대 완벽해질 수는 없는 존재가 기업이다. 환경이 변화하고, 규제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의 생각과 여론이 변화한다. 직원들의 생각과 기준도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계속 변화하는 기업에게 완벽이라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재까지 잘되어 있던 체계나 상황도 언제 잘 못된 것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자신은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 언제쯤 하루 아침에 별 것 아닌 것이 될지도 모른다. 어제까지는 그것이 관행이었고, 내부에서는 상식이라 느꼈는데, 이제 보니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자만했던 기업은 그로 인 해 위기가 발생하면 처음부터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때문에 더욱 위험 해 진다. 사후에도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데, 외부에서 잘 몰라서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생각하게 된다. 불순한 세력이 우리를 음해하려 한다고도 생각한다. 자만심으로 인한 최초 상황 판단이 더 큰 문제를 잉태하는 순간이다.

이런 기업에게는 제3자의 조언도 잘 통하지 않는다. 여러 조언자들에게 ‘당신이 우리 회사를 잘 몰라서 그런 생각과 조언을 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회장님은 완벽하시다. 우리 임직원은 완벽하다. 우리의 체계나 문화는 완벽하다. 우리의 위기관리 대응 또한 완벽하다.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위기관리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지금도 위기관리를 위해 사과와 해명을 하며 고개 숙이는 경영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마음 속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자만했다’ 또는 ‘심지어 일부 오만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 경영진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완벽한) 우리를 합리적이지 못한 공중이 공격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 피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영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후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던 그 모든 문제의 핵심 원인은 하나다. 자만했기 때문이다. 자만으로 인해 살피고 민감 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게 된 것뿐이다. 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또 다시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필자 정용민은 누구?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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