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도 사각
“월세 못 낸 적? 많지. 30만 원만 밀려도 득달같이 ‘집 비우라’고 통지서가 날아 와. 복지 공무원이 온 적은 없어.”
1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70대 여성 A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한 포대 들려 있었다. 버려진 종이컵을 모아 주민센터에 가져다주고 받아온 것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는 월세가 열여섯 달 치나 밀렸지만 복지 안전망에 포착되지 않은 ‘봉천동 탈북 모자’가 살던 곳이다. 이처럼 월세가 아무리 밀려도 체납 정보가 정부에 통보되지 않는 소외된 임대주택이 전국에 161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탈북 모자인 한모 씨(42·여)와 김모 군(6)이 굶어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로 지난달 31일 발견된 이 아파트는 민간 사업자가 재개발로 신축한 것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사들여 저소득층에 빌려주는 ‘재개발임대’ 아파트였다. 공공 임대주택의 일종이다. 한 씨는 월세를 못 내 2017년 1월 임차 계약 해지까지 당했다.
이것만 보면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에 꼭 맞는 대상처럼 보인다. 공공 임대주택 월세를 석 달 이상 연체한 사람에게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한 씨의 월세 체납 정보는 보건복지부에 통보되지 않았다.
이는 복지부가 공공 임대주택의 여러 유형 중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기존주택 매입임대 등 세 종류의 주택에 사는 사람만 월세 체납 정보 수집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아파트에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국 임대주택 245만9760가구 중 이 세 종류에 해당하는 건 84만4598가구(34.3%)뿐이다. 민간 임대주택(100만2922가구)은 물론이고 임대 기간이 5∼50년인 공공 임대주택(35만1096가구)이나 행복주택(1만5866가구) 등 나머지 161만5162가구는 사각지대에 있다.
한 씨 모자처럼 재개발(재건축 포함) 임대주택에는 6만4161가구가 산다. 이들이 한 씨 모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월세 체납 정보가 당국에 통보되지 않는다. 한 씨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80대 여성 B 씨는 “혼자 사는 입장이라 월세가 밀리고 하면 나라(정부)에서 한 번씩 나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살던 A 씨(80·여)가 숨진 지 열흘 이상 지난 상태로 아파트 화장실에서 발견된 일도 있다.
봉천동 주민센터 담당자가 한 씨 모자에게 서울시 ‘육아교육 서비스’를 안내하기 위해 올 4월 한 차례 아파트를 방문했던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복지부와 관악구에 따르면 담당자는 인기척이 없어 현관문에 메모와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왔지만 끝내 답신이 없자 관리를 종료했다. 복지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한편 탈북자 단체들은 이날 한 씨 모자의 죽음과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국에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한 씨가 전남편으로부터 임신 중에도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한 씨 모자의 부검이 끝나면 ‘북한인권탈북단체총연합’을 통해 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은지 eunji@donga.com·박상준·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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