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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신진환의 '靑.春'일기] '적반하장' 일본, 광복절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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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후손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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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독립유공자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의인들에게 '감사'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올해 제74회 광복절을 맞이하는 기분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일본 정부가 한국을 콕 찍어 경제 보복을 결정한 것으로 모자라 안하무인 격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영향이 큰 듯하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경제 전쟁'을 벌인 일본이다. 그런 일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하는 지금, 특히 조부(祖父) 생각이 많이 난다. 중·고교 시절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맞붙는 한일전은 반드시 챙겨봤다. 축구든 권투든 스포츠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일본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거머쥐면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꺾으면 "한국은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해"라는 말씀을 꼭 하셨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자신이 10살 때쯤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고 했다. 어떻게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른 채 한 주조소에서 일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술을 만드는 곳이다 보니 머리가 아팠고 고된 생활이 반복됐다고 했다. 끼니는 매번 조그만 주먹밥이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배가 차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강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다른 조선인이 많았고, 이유도 없이 일본인으로부터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도 했다.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멸시를 받으며 일본인들은 마치 짐승을 부리듯 했단다. 한번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 일본 아이가 심하게 놀리는데,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웃고만 있었다고 했다. 그때 그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미세하게 떨리는 입 모양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일본에 피해를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거나 집계되지 않은 무수한 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잊혀갈 뿐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 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희생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및 후손이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를 보면 비통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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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대통령이 허리를 굽히며 예우하는 것은 독립유공자 또는 그 유족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난해 8월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 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 고 손용우 씨의 배우자 김경희 여사에게 인사하는 모습./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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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우리 국민이 자발적으로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만큼 일본에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독립운동과 비슷하다. 반면 일각에서는 친일 발언이 나와 그저 놀랍기만 하다. '토착왜구' '신친일파' 논란을 단순한 프레임으로 치부할 수 있냐는 생각마저 든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제각기 다를 수 있지만, 노골적인 친일 발언과 국민을 비하하는 발언을 보고 있자면 진정한 광복을 이뤘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국권을 침탈한 일본의 만행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도 일본의 조선인 노동 착취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뻔뻔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요구하는 반성은커녕 비아냥거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참담함을 느낀다. 일본의 지난날 만행은 피해자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뒤따라야 해결되는 문제다. 그러나 너무 요원해 보인다.

"제가 중국 상해에서 나서 거기에서 자랐는데, 그때는 우리나라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8·15 해방과 더불어 내 고향, 내 나라에 와서 살면서 마지막 가는 날에 내 땅에서, 내 나라에서 묻히기 위해서 그래서 한국에 왔습니다."

주권 침탈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도마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 여사가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후손 초청 오찬에서 한 말이다. 조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및 유족 16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만찬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특히 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와 유족들과 인사하면서 허리를 굽힌 게 인상적이다.

이를 바라보면서, 과연 오늘날 우리가 자유를 누리게 한 '숭고한 희생'을 얼마나 진지하게 기려봤냐는 생각을 했다. 식민 통치를 겪어보지 못해서일까. 그저 말로만, 책으로만 봐와서일까. 부끄럽게도 어느 때부터인가 광복절을 하루 쉬는 날로 여겼던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의인들에게 감사하는 그런 마음이 무뎌졌던 것을 반성하며, 일본과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은 올해,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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