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모자 씌워준 이상철씨…건립 후원에 전시회도
징용자 조부께 배운 역사…"잊으면 반드시 되돌아와"
광복절을 1주일여 앞둔 지난 9일 이상철씨(34)가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앞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평화비)을 닦고 있었다. 머리에는 'Don't Forget Our History'(역사를 잊지 말자)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다. 2019.8.9/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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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일본 경제보복과 일본 내 소녀상 전시 중단으로 국내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일 30대의 한 남성이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앞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평화비)을 묵묵히 닦고 있었다.
서울 공식 최고기온이 34.6도까지 치솟은 이 날, 그는 오전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소녀상과 안내문을 닦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머리에는 'Don't Forget Our History'(역사를 잊지 말자) 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썼다. 74번째 광복절을 앞두고 전국을 돌면서 소녀상을 관리한 이는 경남 거제에 사는 이상철씨(34)다.
그는 올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4월부터 경기 평택, 강원 속초, 서울 등 소녀상에 모자를 씌웠다. 비록 동상이지만 뜨거운 햇살이나 굵은 장맛비를 홀로 버틸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에 한 행동이다.
이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는 '꽃모자 쓴 소녀상'을 볼 수 있었다. 왕십리역 앞을 지나던 정모씨(35·여)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빨간 모자를 쓴 소녀상이 있길래 신기하기도 하고, 한번 더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입추가 지난 뒤 그는 모자를 거두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아간 곳도 있고 더러워져서 버려진 곳도 있었다. 그는 '그냥 가기 뭣해서' 소녀상을 닦기 시작했다. "매연 탓에 시커멓게 변하거나 녹이 슨 것도 있더라고요." 전문적인 약품이나 기술이 없는 탓에 소녀상 1개를 닦는데 1시간여가 걸린다. 그는 <뉴스1>과 만난 이날도 소녀상 4개를 닦는데 3시간여 이상을 쏟았다.
광복절을 1주일여 앞둔 지난 9일 이상철씨(34)가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앞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평화비)을 닦고 있었다. 머리에는 'Don't Forget Our History'(역사를 잊지 말자)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다. 2019.8.9/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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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지난 2015년 우연한 기회에 소녀상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일본 대사관 앞 뙤약볕 아래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현수막을 든 초등학생의 1인시위를 보면서 새삼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다.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점령했던 미크로네시아 연방(남양 군도)에 징용을 다녀온 할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수백번 말한 '과거는 과거로 끝이 아니다. 역사는 잊으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도 그의 결심에 한 몫 했다.
이후 그는 강원 춘천, 부산 등 소녀상 등이 새로 건립될 때 후원 회원으로 참여를 시작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복지시설인 '나눔의 집' 후원도 했다.
그는 지난 2017년에는 소녀상을 거제 시내버스에 태우는 이벤트도 선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알리고 전 세계 여성에 대한 인권 의식을 높이는 취지다. 만화 작가와 함께 전국 74곳 소녀상의 그림 전시회도 열었다. 모두 이씨의 자비로 꾸려진 행사다. 당시 그는 이 행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 뒀었다.
현재 대부분의 소녀상은 건립추진위원회 회원 몇몇이 남아 순서를 정해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에서는 지방의회 차원에서 관리 조례를 제정했으나 미온적인 상황이 많다. 2017년 '부산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던 부산시의회가 관리와 보존을 명시한 개정안을 올해 겨우 통과시킨 것도 일례다.
"오래된 소녀상은 도색이나 보존처리 같은 관리가 필요해 보여요. 지역 사회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이씨가 말했다.
그는 광복절이 낀 8월 셋째주에도 강원 춘천을 향할 계획이다. 춘천 소녀상을 닦기 위해서다. "저 같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아요. '잊지 말자'는 마음을 계속 가진 채 앞으로 한일관계나 미래를 위한 공감과 토론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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