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평화대상 소감 "日 반성해야...통감"
'수출규제 철회' 이틀 만에 1500명 서명
日, 90년대부터 인터넷상 우익 활동 ↑
청구권 협정으로 끝? "일본 정부의 모순"
"아베 정권은 일시적, 韓日국민은 영원"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와다 하루키(역사학자, 日 도쿄대 명예교수)
“한국이 적인가. 수출 규제를 철회하라!” 이런 구호가 울려퍼진 곳. 한국이 아닌 도쿄였고요. 이런 구호를 외친 사람들.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들이었습니다. 그것도 78명이나 되는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데 모여서 이런 구호를 외치고 서명 운동까지 시작을 한 겁니다. 일본 사회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기득권층인 이들이 왜 한국 지지 선언에 나서게 된 건지.
그분들 가운데 한 분을 오늘 직접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일본의 유명한 역사학자세요. 도쿄대학교 와다 하루키 명예 교수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나와 계십니다. 그리고 통역에는 강혜정 통역사 오늘 함께해 주시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日 도쿄대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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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다 하루키> 도모. (잘 부탁드립니다.)
◇ 김현정> 보니까 한국에 방문 중이시더라고요. 무슨 일이신가 봤더니 만해상을 수상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 와다 하루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고맙습니다.)
◇ 김현정> 평화를 기리는 상.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면서, 평화에 이바지하는 분들께 드리는 그런 상을 수상하게 되신 건데요. 마침 한일 관계가 이렇게 최악으로 치달을 때 이런 상을 받게 되셔서 조금은 기분이 묘하실 것 같기도 하고 어떠십니까?
◆ 와다 하루키> 만해 한용운 선생에 대해서는 늘 존경하는 마음을 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성함이 들어간 상을 올해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수상하게 됐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과 일본 사이 혹은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인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라는 것을 제가 고등학생 당시부터 생각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구보타 발언 사건도 기억이 났습니다. 한일 회담이 구보타 발언으로 인해서 결렬됐을 때 모습에 대해서요.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기초다” 라고 한국 측 대표가 발언을 하고 그 자리에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던 일이 있었는데요. 저는, “일본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일기에 당시 쓴 것이 있습니다.
◇ 김현정> 고등학생 때.
◆ 와다 하루키> 그때부터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고요. 그때 그 마음으로 이후에도 계속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노력해 왔던 것 같습니다. 올해 이 만해상을 수상하면서 그때와 같은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일본인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지금 여러분 들으신 것처럼 고등학생 때부터 이 한일 관계의 바른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한국을 위해서 일본 내에서 곧은 목소리를 쭉 내온 분입니다. 와다 하루키 교수. 그야말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인데요.
이번에도 역시 목소리를 내셨어요. 일본인 78명이 모여서 “한국이 일본의 적인가. 이번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하라.” 이런 성명을 내셨습니다. 어떤 분들이 함께하신 건가요, 교수님?
◆ 와다 하루키> 이전부터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뭔가 필요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가장 크게 있었던 것은 2010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100년째 되던 해에, “병합은 잘못됐다” 그러고 “병합 조약도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불의, 부당한 것이었다” 라고 주장하는 선언을 한일이 공동으로 1000명 선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걸 준비한 사람들 가운데 일본 측의 한 사람이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일본에서 뭔가 좀 생각을 하고 의견을 발표해야 되지 않는가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78명은 꾸준히 이런 쪽으로 목소리를 내시던 분들이겠네요.
◆ 와다 하루키> 78명이라는 숫자가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에 주도한 7, 8명이 주변 사람들한테 제안을 하고 그래서 (78명은) 처음으로 서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몇이나 되고 또 그런 식으로 정부에 반하는 입장을 표현하면 뭔가 따돌림 당하거나 이런 일은 없는지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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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다 하루키> 지금까지 이런 류의 지식인 선언이라든가 여러 가지 사회적 발언을 크게 질러보는 그런 서명을 보았을 때 (참여하는 사람들이) 500명 정도가 크게 생각할 수 있는 큰 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선언을 7월 26일에 인터넷상에 띄우고 서명을 시작하자 이틀 만에 약 1500명 정도가 모여졌고요. 제가 10일에 일본을 출국했는데 그때 시점에 약 8000명 정도에 달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8월 10일.
◆ 와다 하루키> 네. 그런데 이 8000이라는 숫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 개인 의견들을 쭉 피력할 수 있는 란도 만들고 그것을 실제로 공개도 함께하고 있는데요. 3500명 정도가 자기 의견을 쓰고 있고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진지하고 의미 있는 내용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김현정> 그중에서는 당연히 아베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이 다수였을 테고요.
◆ 와다 하루키> 네. 정부의 의견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막상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의견까지 공개한다고 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 방해가 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요. 그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고요.
◇ 김현정> 반면 그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을 것 같은데.
◆ 와다 하루키> 이것을 인터넷으로 공개를 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인터넷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게 대체로 우익적인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로부터는 이 선언에 대해서 상당히 공격과 비난의 그런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령, “78명의 사람들 이름과 면면을 봤더니 늘 하는 사람이 또 나왔구나. 아무 의미 없다” 라고 한다든가 혹은 아사히신문 같은 곳이 그것에 대해서 뭔가 기사를 썼는데 “전혀 공감이 안 가네” 라든가 그리고 실제로 이 서명을 모으고 있는 사이트를 없애려고 하는 그런 공격도 나타났었고요.
◇ 김현정> 우리가 아는 그 인터넷 우익들의 활동이군요.
◆ 와다 하루키> 이게 일본의 특징입니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초반 정도부터 좀 개혁적인 세력들이 상당히 쇠락해가는 그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90년대 초반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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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다 하루키> 네. 그래서 그 당시부터 우익적인 세력들이 크게 대두를 했고 그 시기가 마침 인터넷이 많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기가 유사하게 겹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터넷 세계에서는, 온라인상에서는 거의 우익적인 목소리가 상당히 횡행한다는 게 일본의 특징으로 있는데요. 그러다가 이번에 이런 성명을 인터넷을 활용해서 발표를 하니까 이에 반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좀 당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정부도 굉장히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 국민들 중에는 현재 한국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일본 국민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한국을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비판적인 견해가 다소 있더라도 한국과 우호적인 좋은 관계를 바라는 사람이 훨씬 대부분입니다, 일본 사람 가운데도.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은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냐”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런 대다수 사람들에게 좀 더 현재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김현정>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가 나오셨으니까 제가 몇 가지 역사적인 팩트를 따져보고 싶습니다. 질문드리고 싶어요. 우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우리 이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서 일본 정부, 아베 정부는 말합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개인들의 배상권은 다 소멸됐는데 왜 개인들이 배상을 해 달라고 하느냐. 이거는 국제법 위반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번 경제 도발이 시작된 거 아니겠습니까? 이 부분 어떻게 보세요?
◆ 와다 하루키> 1965년의 한일 기본 조약은 일종의 정치적 타협으로 체결이 된 조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식민지 지배 자체가 부당하다” 는 주장을 하였고 반면 일본 정부는 “일본과 조선 양국의 합의에 따라서 일본의 조선 병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정당하고 유효한 조약에 따라서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것이다. 그러니 반성도 사죄도 필요 없다” 는 그런 입장입니다. 그래서 양국이 고육지책으로 입장 차이를 영어로 ‘올레디 널 앤 보이드(already null and void)’ 라고 표현했는데.
◇ 김현정> already null and void. 그러니까 무효다, 이런 거죠.
◆ 와다 하루키> 이 영어를 한국과 일본이 각각 다른 언어로 해석을 하면서 양쪽의 그 다른 입장 차이가 애매하게 공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기본 조약에 의해서 따라오는 청구권 협정도, “청구권이 소멸됐다” 라는 식으로 양국이 매듭을 지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해결됐냐면, 지금 애매하게 만든 상황 때문에 문제점이 다양하게 남겨지게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체결이 된 것입니다.
◇ 김현정> 그렇게 애매하게 문구를 남겨둔 것이 뒤에 두고두고 문제들을 일으키죠.
◆ 와다 하루키> 1991년에 위안부 문제가 당사자의 공개 증언을 통해서 공식 제기가 되었고 그래서 일본 정부로서도 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응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고노 담화’라는 것이 있었고 여기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군이 관여한 것을 인정한 그런 담화였습니다.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가 해결이 됐다면 발표할 수 없는 그런 담화인데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고요. 이후 1995년에 들어서는 또 ‘무라야마 담화’를 발효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본이 과거 조선에 대해 식민지 지배를 했고, 그것으로 인한 고통과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것을 표명한 일본 정부의 담화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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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잠시만요, 거기서. 그러니까 그런 담화들이 나왔다는 것은 1965년 협정이 온전치 않았다는 거. 그러니까 온전한 사죄가 아니고, 그게 다 마무리가 된 게 아니라는 걸 일본 정부도 인정하는 거란 의미죠?
◆ 와다 하루키> 그런 의미로 얘기하신 겁니다. 고노 담화라든가 무라야마 담화라는 것이 청구권 협정으로 다 끝났다면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아베 총리가) 이 청구권 협정이 국제법에 위반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그런 가운데서도 취해 온 조치를 본다면 병합 조약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모순된 상황이 쭉 있습니다.
◇ 김현정> 그렇다면 그 이후로 우리나라, 한국에서는 어떤 움직임들이 있었나요?
◆ 와다 하루키> 한국에서는 한편 동시에 이명박 정권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나왔죠. 또 그러면서 한국 내 목소리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다름 아닌 아베 총리와 함께 뭔가 만들려고 한 것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귀결이 되어버렸죠. 평가를 어떻게 하든, 어쨌든 일본 정부가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한다면 그 말과는 반하는 조치들을 일본 정부도 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에 대해서 지금 설명드린 것입니다.
◇ 김현정> 그렇죠.
◆ 와다 하루키> 그리고 그다음에는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강제 동원당한 분들의 문제가 남아 있었던 거고. 이에 관련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러네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걸 무랴아마 담화, 고노 담화 또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서 일본 정부도 사실 보여줬다. 이런 말씀이에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거는 조금 배상 판결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일본의 극우 세력들 또 한국 내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장하는 게 ‘식민지 근대화론’ 그러니까 “조선이라는 땅은, 한국은 일본이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이 지배하면서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이다. 일본 덕분에 한국이 발전한 것이다” 라는 주장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 학자로서?
◆ 와다 하루키> 식민지 근대화론 논의는 전혀 새로운 주장은 아닙니다. 식민지 조선에 일본이 좋은 일을 했다. “민둥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줬고 일본이 조선에 대해서 교육을 보급시켰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일본이 식민지에서 교육을 보급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더 식민지를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당연히 한 것이죠.
교육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병사로 만들 수도 없고 노동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러니 뭔가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았냐면 아니라는 것이죠. 식민지 지배를 당했어도 조선은 독립적인 역사를 가진 민족이었고 그런 민족에 대해서 부당하게 말살시키거나 동화시키거나 굴복시키려 한 것이 일개 민족에게 남긴 정신적, 문화적 상처라든가 그런 것은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 김현정> 지울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문화적, 정신적 상처를 남기지 않았느냐 그렇게 보고 계신 거예요.
◆ 와다 하루키> 식민지로 만든 나라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당연히 전개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식민지가 정당했다는 것의 논리로 해석이 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 김현정> “우리 덕분 아니냐, 고마운 일 아니냐” 라는 해석은 절대 있을 수 없는 해석이다. 그 말씀으로 들리네요. 더불어서 “전선으로 끌려간 위안부도 한 명도 없었다, 1명도 끌려간 사람이 없었다” 라는 이 부분은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 와다 하루키> 전선에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주장까지는, 우익이라도 거기까지는 이야기를 못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 김현정> 일본의 우익이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는 주장 안 한다?
◆ 와다 하루키> 그러니까 전쟁터에 위안소를 만들어서 거기에 여성들을 끌고 가서 있게 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모집이 되어서 위안소로 끌려갔고 군인을 상대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당했다 라는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 김현정> 국가가 강제로 저지른 폭력이다.
◆ 와다 하루키> 어떤 형태로든 강제성이 있었다고 피해 당사자들이 생각하면 그것은 강제로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 강제성 중에서도 ‘강간 센터’ 라고 표현이 되는 것처럼 정말 납치 같은 형태로 끌려가서 감금 상태에서 당한 식의 강제성도 있었고요. (따라서) 위안소에서 강제적인 여러 행위들이 있었다. 강제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김현정> 일본의 역사학자조차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왜 우리 내부에서 아직도 이런 학자들의 목소리가 있는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와다 하루키 교수님. 한일이 언제까지 이렇게 다툴 수는 없고. 지금 이 사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할 텐데 어디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어떤 길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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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다 하루키> 아베 정권의 정책이 변경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죠. 그런 정책 부분이 중요하긴 하겠습니다마는 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양 나라 국민 사이의 유대 관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베 정권으로서도 “한국은 적이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는 태도를 계속 견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좋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에 대해서 “그만둬라, 한국과 관계 끊어라” 한다면 엄청난 반발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관계를 맺고 만나면서밖에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목소리를 일본에서도 크게 내고, 한국에서도 혹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또 주장을 하면서 정책의 변화를 견인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형태일 거라 생각합니다.
◇ 김현정> 양국의 국민들이 나서서 변화를 만들어라.
◆ 와다 하루키> 정권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국민들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 김현정> 그럼요.
◆ 와다 하루키> 한국과 일본의 양 국민들은 서로 이해하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신뢰 관계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인간적으로 살 수 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 김현정> 정말 좋은 말씀. 교수님처럼 생각하시는 분들만 계시다면 우리가 이렇게 과거 정리를 못 하고 계속해서 반목하고 갈등하고 할 필요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와다 하루키 교수님이 일본에서 해 주셔야 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강 잘 지키시고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들 많이 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와다 하루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일본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통하는 학자입니다. 도쿄대학교 와다 하루키 교수 그리고 통역에는 강혜정 통역사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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