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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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보고 시점 등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80)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실형을 피했다. 지난 6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각각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윤선(52)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병기(72)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뒤이어 실형을 피한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법정 밖에서 울부짖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권희 부장판사)는 14일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김장수(71)·김관진(70) 전 국가안보실장에게는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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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밖 분노하고 슬퍼한 세월호 유족들
“판사는 사퇴하라” “우리 아이들은 18살에 죽었다” “김자수 개XX 나와라” 판사만이 선고를 읽어 내려가는 조용한 법정 안과 달리 법정 밖은 소란스러웠다. 세월호 유족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법정 문을 세게 두드리는 등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방청권이 없어 입장을 못한 유족들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6월 25일 오후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와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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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은 시끄러운 소리에 선고를 읽다가 잠시 멈추거나, 법정경위를 향해 곤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재판이 끝나고 불구속 상태인 김장수·김관진 전 실장이 법정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직후 세월호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김 전 비서실장 등은 세월호 참사 당시 최고 책임자이자 권력자들인데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며 “절대로 묵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6월 세월호 특조위를 방해한 조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재판 결과를 보고도 다시 한번 더 법원을 믿어보겠다고 한 결과가 이것”이라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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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내부회의 참고용 문서는 허위공문서 작성 아냐”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월호 참사 보고와 관련해 2014년 7월 국회 서면질의답변서 등에 허위 내용의 공문서 3건을 작성해 제출하는 등의 혐의를 받는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았고, 제때 대응했다는 내용이다.
세월호 보고시각 조작 등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허위공문서 작성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5.23/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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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세월호 사고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미흡한 대응 태도가 논란이 됐고 국민적 논란을 해소하고자 국정조사를 실시했지만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는 게 밝혀질 경우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행사했다”며 이는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작성된 공문서 일부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박 전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20~30분 단위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적은 서면질의 답변서는 허위공문서로 유죄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직후 국회질의에 대비하기 위해 정무수석실에서 대통령 행적을 정리한 문서는 허위공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형법 227조에 따르면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는 문서는 확정적으로 의사가 표시된 문서여야 한다. 즉 내부회의 참고용으로 작성된 문서는 확정적이지 않은 초안이나 초고 등에 해당돼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의 양형이유에 대해서는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안 좋고, 개인 이유로 범행을 한 것이 아닌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판결했다.
김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서는 “세월호 사고 당시에 국가안보실에서 근무하지 않아 청와대의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론에서는 비켜있었으므로 범죄에 무리하게 가담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계리 변호사(법무법인 서인)는 “허위공문서작성죄의 양형 기준은 원래 높지 않다”며 “김 전 실장이 아니더라도 집행유예가 나온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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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한 조윤선에는 “검찰 측 공소사실 부족”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피고인들이 실형을 피해간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민철기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및 권리 행사 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정무수석과 이 전 비서실장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무죄였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6월 25일 오후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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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심 재판부는 “공소가 제기된 범행은 하급공무원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법에 반대하는 각종 문건을 작성하게 했다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그 조차도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거나, 유죄로 인정되는 부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보고 조작 및 특조위를 방해한 피고인들 9명 중 6명이 집행유예를, 2명이 무죄를 받은 셈이다.
한편 검찰은 이날 재판에 대해 항소할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김기춘 전 실장의 유죄 선고를 통해 세월호 사고 당일 늑장 대응의 책임이 객관적으로 확인돼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다만 김장수·김관진 전 실장에 대한 무죄선고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 전 정무수석도 지난 6월 27일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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