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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목숨 걸어야 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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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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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예창작회라는 단체가 있다. 단체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글을 쓰는 교사 문인들이 모인 집단이다. 1989년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결성하자 정부가 가입 조합원 모두를 해직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교육 대학살’이라 하던 사건이다. 그 직후에 결성한 교육문예창작회는 전국을 돌며 참교육 실현과 해직교사 원상 복직 등을 위한 문학의 밤을 열었다. 도종환, 안도현, 김진경 시인 등이 해직교사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꼭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현직교사보다 퇴직교사가 많은 모임이 되었다.

<바쳐야 한다>로 재탄생한 시



회원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보니 방학 때마다 지역을 돌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 때는 전북 전주를 거쳐 부안, 군산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짰다. 문인단체답게 신석정 문학관과 매창 시비 등을 둘러보았고,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누었다. 첫날 밤을 보낸 전주 한옥마을도 좋았지만 둘째 밤을 보낸 변산공동체 학교를 잊을 수 없다. 농사지으며 시를 쓰고 변산공동체 학교 교장을 맡은 박형진 시인의 배려로 얻은 숙소였다. 마침 박형진 시인이 새로 펴낸 시집을 선물한 덕에 즉석 시 낭송의 밤을 열기도 했다. 한 권의 시집 속에 오늘날 농촌 현실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전국을 돌다보면 이렇듯 지역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여정으로 금강하굿둑 근처에 있는 이광웅 선생님의 시비를 찾았다. 이광웅 선생님은 교육문예창작회 초대 회장을 했고, 해직교사라는 이름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1992년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교육문예창작회 결성 30주년을 맞아 이광웅 선생님의 시비를 찾는 일은 여러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군산제일고에 근무하던 이광웅 선생님은 1982년 공안 당국이 조작한 ‘오송회 사건’으로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 다음 사면받아 복직했다가 곧바로 전교조 가입으로 다시 해직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감옥살이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끝내 하늘길을 밟아가셨다.

줄곧 내리던 여름비는 시비 앞에 도착할 무렵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잠시 빗발을 멈추어주었다. 시비에는 이광웅 선생님의 대표작 ‘목숨을 걸고’가 새겨져 있었다. 술을 마시든 연애를 하든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 이 땅에서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는 내용의 시이다. 이 시는 박종화에 의해 <바쳐야 한다>라는 제목의 노래로 재탄생했고, 한동안 가슴 뜨거운 청년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았다. 시비 앞에 소주 한 잔 올린 다음 누군가의 입에서 <바쳐야 한다>가 흘러나왔다. 함께 따라 부르는 동안 잠시 가사가 막히기도 했고, 절로 처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30년 저편의 세월을 그렇게 시비 앞에 부려놓고 돌아섰다.

목숨 건 타전 부호



일상으로 돌아온 며칠 후 나는 정말로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지난번 칼럼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있기를 바란다고 했던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여전히 공중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이 결코 저 멀리 과거 속으로 사라진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김용희씨가 그런 현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뒤에서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 돌아왔다. 공중에서 흔들리던 김용희씨의 휴대전화 불빛이 전철을 타러 가는 등 뒤를 내내 따라왔다. 목숨을 건 타전 부호였다.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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