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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상해임시정부청사…김철 선생 독립운동 정신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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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임시정부 당시 유물·사진 전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생활 공간 재현

아시아경제

전남 함평군에 있는 상해임시정부청사 역사관 전경. 사진=함평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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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백은하 기자] 제 74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김철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에 다녀왔다.


호남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1886~1934) 선생을 기념하는 ‘김철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역사관)는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함평군 일강로 873-12)에 위치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가로 2.1m, 세로 1.8m, 높이 6.2m에 달하는 김철 선생의 동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 팔을 높이 치켜 든 형상에서 독립을 꿈꾸던 선생의 결기가 느껴졌다.


계단을 오르자 김철 선생의 손자이자 ‘김철기념관’ 관리를 맡고 있는 김만선(69)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철기념관’ 앞 뜰에는 자미화, 반송 등이 아름답게 정돈돼 있었다. 잡풀 하나 없이 깔끔한 모양새가 김만선씨가 이 공간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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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기념관을 관리하고 있는 일강 김철 선생의 손자 김만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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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선씨는 “이 기념관은 지난 2003년도에 문을 열었다. 그 때부터 이 곳의 관리를 맡고 있다.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김철기념관, 구봉사, 큰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단심송(丹心松), 상해임시정부청사 순서로 돌아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철 선생은 아들이 없어서 후손인 함평에 살고 있던 김만선씨의 아버지 故 김오근씨가 양자로 입적을 했다.


한옥 팔작지붕으로 된 ‘김철기념관’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김철 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당시의 사진, 노트, 유물, 건국훈장독립장 등이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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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임시정부청사 전시실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제6차 임시의정원 폐회 후 새로 성립된 국무원 요인의 기념촬영 사진. 뒷 줄 맨 왼쪽이 김철 선생이다. 앞줄 가운데가 안창호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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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 선생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했던 각료 중 한 분으로 지난 1886년 10월 15일,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했다. 경성법률전수학교를 거쳐 지난 1915년 일본 명치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집안의 소작인들에게 농토를 나누어 주고 ‘종’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방면했다.


지난 1917년 조선광복을 위해 중국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신익희 등과 함께 상해시 보창로 프랑스 조계 내에 대한독립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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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임시정부청사역사관에 전시돼 있는 김철 선생 사진.


김철 선생은 함평에 있는 천석꾼 재산을 처분해 상해임시정부 터를 마련하는데 기여했고 나머지는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상해임시정부의 교통차장, 국무원 회계검사원장, 군무장, 재무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1934년 6월 29일 급성폐렴으로 중국 항주 광자병원에서 향년 48세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했다. 김철 선생의 유해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의 무덤이 있던 곳의 흙을 가지고 와서 ‘구봉사’에 모셨다. 지난 1962년 건국훈장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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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김철기념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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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기념관’을 둘러 본 후 ‘상해임시정부청사’로 발길을 돌렸다.


김만선씨는 “지난 2009년 6월, 국내 최초로 상해임시정부청사를 재현한 이 역사관이 개관했다. 이 청사는 연면적 876㎡ 규모, 지상 3층 건물이다. 당시 푸칭리 청사 붉은 벽돌집 형태의 중국 현지 건물을 그대로 복원했다”고 전했다.


앞마당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 동상이 있었고, 전시장 입구에는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있었다.


김씨는 “이 곳은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와 공간을 채운 가구까지 80여 년 전 상해임시정부에서 실제 사용했던 것들과 비슷한 것으로 비치했다”고 설명했다.


‘상해임시정부청사 역사관’은 총 3개 전시실로 구성돼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당시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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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임시정부청사 역사관에 있는, 상해임시정부 회의실을 재현해 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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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빛바랜 태극기와 임시정부 회의실,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부엌과 화장실 등이 있었다.


2층에는 김구 선생 집무실이 있었다. 3층에는 이봉창,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이 임시 숙소로 이용했던 침실이 복원돼 있었다. 또한 일제의 만행과 고문 기구 등도 전시돼 있었다.


전시장 벽에 씌어져 있는 무명 독립운동가가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냈다는 혈서의 내용이 가슴을 쳤다.


“이 한 몸 돌보지 않고 나라에 몸 바쳐 만 번 죽더라도 앞으로 나갈 것을 하느님과 조상에 맹세하노라”


함평군 관계자는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역사 공부의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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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임시정부 역사관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 집무실 재현 공간.


호남취재본부 백은하 기자 najubong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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