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본 선임기자
아시아 침략전쟁 씨앗뿌린 쇼인
아베는 '정신적 지주·우상' 예찬
日의 과거역사 부정·경제 도발은
개헌본격화 위한 '新정한론' 본색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근대화와 산업혁명, 아시아 침략전쟁의 씨앗을 뿌린 요시다 쇼인(1830~1859) 예찬론자다. 쇼인은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자 아베의 정신적 지주이고 우상이다. 이들의 좌우명은 공교롭게 지성(至誠)으로 똑같다. 아베는 2013년8월 쇼인의 묘를 참배하며 “가장 존경하는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쇼인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일본 본섬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깝고 반(反)막부(쇼군) 성향이 강하던 조슈번(야마구치현)의 사무라이이자 교육자였다. 미일 화친조약이 맺어진 1854년 서구를 탐방하기 위해 요코하마 부근에 정박한 미국 군함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투옥될 정도로 진취적이었다. 감옥에서도 죄수를 가르치다가 1856년 가택연금으로 바뀌자 제자 양성에 들어가 이듬해 ‘쇼카손주쿠’라는 학당을 열어 유학·군사·산업·세계정세를 교육하며 화혼양재(和魂洋才·일본 정신과 서양 지식)를 강조한다. 에도(도쿄) 막부가 1858년 미국·러시아·영국 등과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자 존왕양이(일왕을 받들어 서양을 물리침)를 내세우며 막부 타도에 나선다. 하지만 그해 12월 막부 고관 암살 사건에 연루돼 다음해 10월 처형됐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존경의 의미로 ‘선생’으로 불린다.
문제는 그가 열강들 때문에 일어난 손해를 아시아에서 보충해야 한다며 정한론(征韓論)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점이다. “미국·러시아 등 이적(夷狄·오랑캐)에게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중략) 군함 등을 갖추고 훗카이도를 개척하고 캄차카반도와 오호츠크해를 빼앗고 류쿠왕국(오키나와)을 손에 넣고 조선을 정벌하고 만주를 점령하고 대만과 필리핀 등을 침략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그는 조작됐다는 평을 듣는 ‘일본서기’ 등을 믿고 3세기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벌하고 조공을 받았으나(임나일본부설의 근원) 조선이 교만해졌다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벌(임진왜란·정유재란)에 나선 것처럼 조선을 정복해야 한다고 했다.
쇼인의 제자들은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등이 대정봉환(쇼군이 통치권을 일왕에게 반납)을 주도한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1866년 앙숙이던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삿초동맹을 끌어내는 등 막부 타도의 선봉에 섰다. 앞서 쇼인은 1854년 사카모토를 만나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일왕이 친정에 나선 메이지유신(1868년) 정부에서 쇼인의 제자들은 이토에 이어 야마가타 아리토모(일본 군국주의 아버지)까지 총리가 둘 나오고 장관이 넷이나 배출된다. 쇼인의 ‘대동아공영론’은 1만엔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저술가이자 게이오의숙(게이오대) 창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탈아론(脫亞論)으로 계승되고 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진다.
쇼인을 기리기 위해 1869년 도쿄에 세워진 신사(조슈신사)는 이후 전범이 다수 합사되며 아베가 참배를 고집하는 야스쿠니신사가 된다. 아베는 쇼인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1993년 부친의 지역구를 세습해 9번이나 중의원에 당선됐는데 2015년 쇼인의 학당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등재시켰다.
아베는 13일 부친 묘소에서 “최대 과제인 헌법에 관해 국회에서 논의를 본격 추진할 때가 왔다”고 다짐했다.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한 고조부(오시마 요시마사)와 A급 전범 용의자였던 외조부(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피를 물려받아 평화헌법 9조를 고쳐 자위대를 전쟁 가능한 군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침략의 역사 부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망언 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에 대한 경제도발과 개헌 본격화까지 신(新)정한론이 심상치 않다.
“일본에서 쇼인의 침략사상은 잘 논의되지 않고 위대한 교육가, 사상가로 미화됩니다. 지피지기를 해야 경제도발도 극복하고 건강한 한일관계도 만들 수 있어요.”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의 저자인 김세진씨가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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