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건실한 중소기업 대표들 모임에서도 회사를 매각한 사례들을 얘기하며 다들 부러워합니다. 기회가 되면 본인들도 회사를 팔고 싶다는 거죠."
노재근 한국금속가구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사진)은 회사를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고 매각하려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주변에 많다고 우려했다. 이대로 가면 제조업종을 중심으로 국내 중소기업은 장수기업 육성은커녕 기술을 축적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출범한 '기업승계활성화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노 회장은 "정부가 가업승계 공제제도 일부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속과 증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고 기업의 영속성을 위한 '배턴터치'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는 가업상속공제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 개편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업종과 자산·고용 사후관리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고, 이 기간에 업종 변경을 일부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 회장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창업주들은 죽기살기로 바쁘게 일해와 체계적으로 승계 준비를 하지 못했다"며 "만일 2세가 계속 기업을 이끌 뜻이 있더라도,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는데 업종·고용 등 아버지가 해오던 방식 그대로 몇 년을 유지하라면 그게 가능한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새로운 업종 진출이나 공장 이전 등 2세의 경영활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 누구라도 복잡한 승계제도 조건을 알고 나면 승계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창업주가 80~90세 고령이 돼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사전증여를 하고 싶어도 공제 한도를 100억원에 묶어 뒀다"며 "이는 자식 간에 싸움이 나기 딱 좋은 수준이다. 공제한도를 500억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창업주 자녀들은 대개 회사를 팔아서 부동산이나 현금으로 받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업을 할 뜻이 있더라도 힘든 제조업을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팔아 그 돈으로 벤처캐피털이나 외식업 등을 새로 창업하기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노 회장은 최근 사모펀드 등에 회사를 매각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는 세태에 대해 우려했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면 기술 축적 등 내실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에 치우치기 쉽다는 설명이다. 노 회장은 "사모펀드 중에는 회사 경영이 아니라 보유 부동산 등만 보고 매입하는 경우도 숱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업의 첫째 의무는 '영속성'인데 승계 문제가 힘들어지면 사회적으로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 회장은 "일본 수출규제 문제를 보더라도 기초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승계를 통해 영속성을 가지고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가야 한다"며 "가업승계는 더 쉽도록 유도해 회사를 성장시켜 고용을 늘리고 세금과 기부금도 더 내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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