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록히드 마틴사가 생산하는 스텔스 전투기 F-35A 모습.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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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터키에) 최첨단 전투기 일부를 판매할 준비가 돼 있다.”(지난달 18일 러시아 국영 방산업체 로스텍)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위태롭다. 터키가 나토 동맹인 미국ㆍ유럽연합(EU)과 부쩍 사이가 소원해진 사이, 러시아가 손을 내밀고 있어서다. 미국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터키가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S-400’ 체계의 인수를 강행하자, 결국 지난달 미국은 경고했던 대로 록히드 마틴사(社)의 F-35 스텔스 전투기 국제 개발 프로그램에서 터키를 쫓아냈다. 이에 러시아가 자국의 방공 미사일에 이어 최신형 전투기도 사라는 제안을 터키에 건넨 것이다.
실제로 터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 들어 나토 동맹인 미국, EU와는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며 단독 행보를 보이는 한편, 서방과 대립하는 러시아와는 갈수록 밀착하고 있다. S-400 도입 및 미국의 F-35 판매 중단 조치뿐만 아니라, 동(東)지중해 지역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를 두고 나토 동맹국들과 자원 갈등까지 벌이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사태가 악화할 경우 나토에서 터키가 축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 제재 압박에 터키 “아직 S-400 운용 전"
지난달 12일 터키 수도 앙카라의 공군기지에 러시아산 지대공 미사일 'S-400' 부품이 인도되고 있다. 앙카라=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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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ㆍ안보 분석업체인 스트랫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터키를 F-35 프로그램에서 방출하는 것의 진짜 비용’이라는 보고서에서 “터키가 F-35를 대체할 전투기를 조달할 방안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터키의 공군력은 수십년 전에 들여 온 F-16 전투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F-4와 F-5 기종은 지난 몇 년간 추락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공군력 현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때문에 스트랫포는 터키가 일단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 ‘시간 벌기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달 12일부터 S-400를 수도 앙카라 공군기지로 인도받기 시작했으면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현지 언론에 “2020년 4월까지는 미사일 및 부품 전량이 갖춰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이 밝힌 건 상징적이다. 당장 가동되는 게 아니니, 미국에 추가 제재를 하지 말아달라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미국이 ‘적대세력 대항 제재에 관한 법률(CAATSA)’에 따라 터키를 제재할 경우 비자 발급 금지와 미 금융기관 접근 금지, 사실상의 무기 수출 전면 제한 등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커질 수 있다. 특히 군사 관련 추가 체재가 실시되면, 터키는 기존 무기 체계 다수를 구성하는 미국산 부품 조달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F-35 다국적 프로그램 결렬에 美ㆍ터키 모두 타격
지난 4월 8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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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터키로서는 첨단 전투기 도입이 막힌 데다, 상당한 경제적 손실도 불가피하게 됐다. 본래 터키 업체들이 F-35 프로그램에서 900여개 부품을 생산ㆍ조달하기로 돼 있었으나, 이제는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이번 F-35 사업 중단으로 터키가 입을 피해액은 90억달러 이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부품 조달선 변경에 따른 미국 측의 추가 비용은 약 6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도 터키에 대한 F-35 컨소시엄 배제는 타격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백악관은 지난달 터키 방출 결정을 발표하면서 “터키가 도입하려는 S-400에 연동된 네트워크가 F-35의 기밀정보 등 나토의 민감한 군사 정보를 러시아에 유출할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스트랫포는 “미국도 내심 F-35의 공급ㆍ생산 사이클에 차질을 빚고 싶지 않았겠으나, 터키를 방출하면서 이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 국방부 관리들은 터키가 맞대응 조치로 자국 영공을 사용하는 나토 합동훈련이나, 남부의 ‘인지를릭’ 공군기지 사용을 막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터키와 마찰 ‘키프로스’에 무기 수출 허용한 美의회
지난달 9일 헬리콥터 한 대가 동지중해 북키프로스 해역으로 급파돼 터키 시추선 ‘파티흐’ 부근을 비행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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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키는 EU와도 동지중해 키프로스 해역의 시추권을 두고 자원 분쟁을 겪고 있다. 키프로스는 1974년 터키의 침략 이후 분단돼 현재 그리스계 남키프로스와 터키계 북키프로스로 쪼개져 있다. 이 중 전자가 ‘키프로스공화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있다. 터키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키프로스 정부를 인정하며 ‘뒷배’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키프로스는 종교ㆍ민족적 차이로 오랫동안 충돌해 왔다. 최근 들어선 동지중해 해역에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이 대규모로 발견되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됐다. 남키프로스는 미국 엑손모빌과 프랑스 토탈 등의 서방의 에너지 대기업들과 함께 자원 개발을 추진해 왔는데, 북키프로스의 승인을 받은 터키가 올해 5월부터 이 해역에서 탐사 시추를 시작하며 ‘같이 나눠 쓰자’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남키프로스는 터키의 활동을 ‘불법 시추’로 규정해 반발했다. 미국과 EU도 이에 동조해 압박에 나서고 있다. EU는 지난달 15일 열린 외무장관 회의에서 터키와 종합항공운송협정 체결 협상을 중단한 것은 물론, 유럽투자은행 차원의 터키 대출 관련 사항 재검토, 1억4,480만유로(약1,967억원) 지원금 삭감 등의 징벌적 조치도 내렸다.
이에 더해 미국은 아예 32년간 막혀 있던 남키프로스에 대한 무기 수출 제한을 해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12일 미 하원은 남키프로스를 상대로 1987년부터 발효된 무기 금수조치를 풀고, 200만달러 상당의 군사훈련을 지원하는 조항이 담긴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MEMO)에 따르면 이 법안에는 남키프로스가 미국의 무기를 수입할 경우, 자국 항구를 러시아가 이용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러시아의 수호이-35, F-35 대체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로스텍사에서 생산하는 4.5세대 전투기 수호이(Su)-35의 편대 비행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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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초점은 터키와 나토 동맹들 간 파열음이 멎지 않는 상황에서 이같이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 온 러시아의 제안에 대한 터키의 수용 여부다. 지난달 18일 로스텍사(社)의 세르게이 체메조프 최고경영자는 “만일 터키 동료들이 의사를 보인다면, 우리는 수호이(Su)-35 전투기를 전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터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터키와 나토는 돌아올 수 없는 관계로 갈라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u-35는 러시아 공군의 옛 주력기인 수호이(Su)-27 노후화에 따라 레이더를 비롯한 항전 장비와 엔진 등을 전면 교체한 업그레이드 모델이다. 지난 2015년 중국과 공급 계약을 맺은 24대를 올해 모두 인도했고, 지난 3월에는 이집트와 20여대 수출 계약도 새로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5세대 스텔스기인 F-35와 비교할 때,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되는 Su-35는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라 터키가 나토와의 관계 파탄을 감수하면서까지 Su-35를 차세대 전투기로 수입할지는 미지수다.
미 국가안보 전문매체인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두 전투기를 비교한 지난 2월 12일자 보고서에서 Su-35와 관련, 독보적인 기동성과 뛰어난 폭탄 탑재 무량 등을 갖췄다면서 “4세대 전투기 설계의 정점을 보여 준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두 전투기가 맞붙는다고 가정하면, 근거리 전투에 돌입하기에 앞서 애초에 Su-35가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를 탐지해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5월 터키는 미국과 F-35 프로그램을 두고 마찰이 빚어지자, 러시아제 첫 스텔스기인 ‘Su-57’를 대신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디펜스 뉴스에 따르면 이미 수년간 개발 프로젝트가 지연돼 온 Su-57는 여전히 개발 마무리 단계로, 이런 탓에 러시아는 아직 Su-35 수출에 주력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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