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2 (토)

"손실 없을거라는 은행말만 믿었는데…석달새 2억 날아가"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DLS 뇌관 터지나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기도 오산시에 사는 김 모씨(63)는 지난 5월 시중은행에서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 스왑(CMS) 7년물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상품에 가입했다. 내년 5월 20일 만기가 돌아오는 1년짜리 상품이었다. 김씨는 퇴직금까지 합쳐 총 4억7000만원을 은행에 맡겼다. 은행 측에서 '손실이 나는 상품이 아니다'며 강력하게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품 가입 2주 만에 손실률이 15%에 이르기 시작했다. 올 들어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 등 불안전성이 커지면서 영국 CMS 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은행 측에 따져 물었으나 '만기까지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가입 3개월이 지난 지금 원금의 절반인 2억원이 날아갔다"고 하소연했다.

15일 유럽 금리에 연계된 파생금융상품에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 판매 은행과 금융감독당국 등이 대응책 고심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분쟁조정신청만 5건에 달하고, 한 법무법인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참가자 모집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우선 시중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DLS 상품 구조와 판매 규모, 손실액 등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은 상황 파악이 끝나는 대로 다음주 중 '불완전판매' 현장조사에 나설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은 금융사가 고객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판매했는지다. 해당 상품은 만기 때 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연 3~5% 수익을 얻지만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전액을 잃는 '고위험' 구조라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불완전판매로 손해를 봤다"며 금융사를 상대로 단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당국은 금리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일종의 '전략'으로 선택해 적극적으로 판매했는지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은행이 적극적으로 고위험 상품을 판매했다면 불건전영업행위로 제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파생금융상품은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는데 법에 따르면 '투자자 보호나 건전한 거래 질서를 해칠 때'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건을 점검한 뒤 대략적인 배상 판단 기준을 제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민원 가운데 기존 판례가 없거나 복잡한 법률적 판단이 필요할 때 분쟁조정위원회에 올려 전문가 의견을 듣는다.

예를 들어 분쟁조정위원회가 '고령자에게 고위험 상품을 판매했을 때' 등을 금융사에 배상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상품이 가입 금액 1억원 이상인 사모펀드라 투자자 책임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높다. 고액 자산가가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투자한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애초 즉시연금 사태처럼 일괄구제도 검토했으나 이번 사건엔 적용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금감원은 지난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즉시연금 분쟁조정을 신청한 소비자 손을 들어주면서 다른 소비자에게도 미지급금을 주라고 보험사에 권고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약관'이 아닌 불완전판매가 있는지가 핵심이라 개별 투자자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DLS를 판매한 은행들은 분쟁조정위원회 결과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다. 분쟁조정위원회가 정해준 배상 기준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소송에 대비해 내부 판매 절차 점검과 자료 수집 등의 과정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주요 연기금들이 DLS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나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위탁하는 고용보험기금의 경우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를 기초 자산으로 만든 DLS에 584억원을 투자해 476억원(81%)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A공제회는 투자 자산의 일부를 같은 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A공제회의 경우 아직 상품 만기가 남아 있어 독일 국채 금리가 올라 손실액이 줄어들기를 희망하는 상황이다.

■ <용어 설명>

▷ 파생결합증권(DLS·Derivatives Linked Securities) : 이자율과 통화(환율) 실물자산(금·원유 등) 신용위험(기업 신용등급의 변동·파산 등) 등의 변동과 연계해 사전에 정해진 방법에 따라 만기 지급액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DLF는 DLS를 편입한 펀드를 말한다.

[이승훈 기자 / 정석환 기자 / 이새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