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왕의 8·15 추도사는 어느 때보다 그 표현과 수위를 세계가 주목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일왕이고, 석달 전 즉위식 후 짧은 소감에서도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며 과거사엔 말을 줄인 그였다. ‘깊은 반성’은 4년 전 아키히토 상왕이 ‘깊은 슬픔’에서 사죄 수위를 격상시킨 표현이다. 그 촉발점도 그해 나온 아베의 담화였다. 아베 총리가 “전쟁과 아무 관계 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된다”며 전쟁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하자 일왕이 직접 견제·비판한 것이었다. 그 표현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새 일왕도 이어받았다. 국정에 간여할 수 없는 ‘상징적 국가원수’ 지위이지만, 침략국의 흑역사에 선을 그으려는 양심세력의 정점에 일왕 스스로를 매김한 셈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폭주에 또 하나의 ‘심정적 제동’이 걸리길 기대한다.
다시 눈은 오불관언하는 아베 총리로 향한다. 그는 오늘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내고, 300만명의 전몰 희생자 성격만 열거하며 가해자의 책임은 사죄하지 않았다. 이틀 전엔 외할아버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묘소를 다녀오며 개헌 논의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한 터다. 군국주의로 달려가는 ‘아베의 관성’과 ‘양심세력의 거울’이 공존하는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그토록 새출발의 뜻을 키우려 했던 레이와 시대의 일왕까지 이어받은 ‘평화’ 메시지를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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