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선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거티브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9·11테러 발생지인 뉴욕의 그라운드제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등이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이다. 우리 사회에선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며 ‘네거티브 유산 논란’이 불붙었다. 최근엔 사안에 따라 보존 여부와 방식을 신중하게 찾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인천 부평구에선 대표적인 네거티브 유산으로 꼽힐 만한 ‘미쓰비시 줄사택’ 철거 논란이 뜨겁다. 이곳은 1938년 일본군 무기를 만드는 조병창의 하청업체인 미쓰비시 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됐던 노동자들의 합숙소였다. 집들이 줄세운 것처럼 나란히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서 이렇게 불렸다. 1000여가구가 있었지만 수십 채가량만 남은 이곳은 사실상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강제노동자 합숙소다. 당시 주거 현실을 볼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지만 9개 동의 줄사택 중 3개 동이 이미 철거됐고 추가로 2개 동도 철거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 공동이용시설과 주차장 등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남은 줄사택 보존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일제 군수기지의 흔적이 남았던 미쓰비시 강철 공장은 이미 철거돼 공원으로 바뀌었다.
식민지 문제와 관련해 인적 청산은 철저히 하되, 물적 청산은 하지 않고 교훈의 현장으로 남기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다.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가뜩이나 일본은 위안부 등 있는 사실도 부정하고 있는데, 침략과 수탈의 증거마저 스스로 없앨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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