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 시·어록 차용
남북 평화·경제 교류 부각
총 7800여자 쓰인 경축사
경제 39번·평화 27번 언급
문 대통령이 인용한 김기림 시인의 ‘새나라 송(頌)’은 경제에 초점을 맞춘 연설 기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는 구절에서 등장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이번 연설의 핵심 주제로 뽑혔다. 이 시는 “광복 직후 나온 문학작품 등에 경제건설을 얘기한 게 있으면 찾아보자”는 문 대통령 지시로 채택됐다.
연설문 도입부에는 항일시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 일부가, 말미에는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이 남긴 어록이 담겼다.
연설 중 등장한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 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에도 다양한 서사가 숨어 있다. 러시아 아무르주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전 농업협력, 대규모 농장 건설을 추진했던 곳이다. 아무르강 유역은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공근이 벼농사로 독립운동 재원 마련을 시도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향후 남북과 러시아가 첨단 기술을 도입한 농업협력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서산은 ‘소떼 방북’으로 남북 경제협력에 나섰던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염두에 두고 언급됐다. 1998년 판문점을 넘은 소떼 1001마리는 서산 농장에서 자랐다. 서산 한우는 지난해 4월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상에 오르기도 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약 한 달 반에 걸쳐 마련된 대통령 연설문은 사회 각층의 지도급 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다. 혁신과 평화, 도전을 선도하는 국가, 기술·제조강국 등의 의견이 제안됐고 이를 들은 문 대통령은 “경제와 관련한 희망적 메시지를 던지자”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의 경축사에 비해 이례적으로 경제 비중이 높았다. 총 7800여자의 경축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경제로 39번 등장했다. 지난해 가장 많이 나왔던 평화는 27번 언급됐다. 경축사 분량은 취임 첫해인 2017년 7700자, 2018년 6100자보다 길어졌다.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 구상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한반도 평화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24년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돌파,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의 통일 시 세계경제 6위권 진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2050년경 국민소득 7만~8만달러 시대 등 분석과 통계도 인용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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