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70주기 맞은 호머 헐버트 박사의 '한국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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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74주년을 맞아 나라의 주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들 가운데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도 있는데요. 올해 서거 70주기를 맞은 호머 헐버트 선교사의 한국사랑을 되돌아봅니다. 천수연기잡니다.
[기자]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불리는 호머 헐버트 선교사.
그의 한국사랑은 한글에 대한 애정과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통해 확인됩니다.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의 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헐버트 선교사는 한글의 우수성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미국 언론이나 영문 잡지에 기고를 통해 헐버트 선교사는 한글의 과학성과 간결성 등 문자로서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한글의 보다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 띄어쓰기, 점찍기 등을 도입하는 등 한글연구에도 기여했습니다.
[허현 부회장 /광복회]
"세계 여러 나라의 산천과 풍토, 정치와 법령, 학술 따위를 간추려 ‘사민필지’라는 서적을 한글로 펴낼 만큼, 한글 애용을 역설하신 분이셨으며 ‘한국사’도 간행하셨을 만큼 한국에 대해 박식하신 분이셨습니다. "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한국의 주권 회복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은 후 조약의 불법성을 알리는 고종의 특사로 활약하고,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세 명의 헤이그 특사를 지원하며 일본의 부당한 탄압과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습니다.
일본 통감부의 압박에 결국 한국을 떠나야 했던 헐버트는 미국에서도 지속적으로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동진 회장 /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서울에서 경술국치일이 1910년 8월 29일에 발생했는데 8월 29일자로 바로 미국 신문에 기고한 자료를 발굴했습니다. '일본의 외교는 속임수가 전부다. 일본 사람들은 처음에 달콤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상대방을 갉아먹는다. 세계 각국은 일본의 사기외교에 속지 말아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1949년 7월 2일자 미 스프링필드 유니언 기사에서 헐버트 선교사는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중 하나다(Korean are among the world`s most remarkable people.)"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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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4년 만에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지만 그는 고령의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일주일 만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미국을 출발하기 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도 '한국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민족 중 하나'라고 말해 한국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윤경로 교수 / 한성대 전 총장]
"기독교 외국인 중에 선교사로 복음전도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세계화하는데 제일 앞장섰던 첫 인물이 아니었을까 "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죽어서까지 한국을 가슴에 품었던 헐버트 선교사. 그의 한국사랑은 이 땅의 한국민들에게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최내호 편집 전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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