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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노부스’ 답게… “생경한 체코 감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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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김규현 영입 후 27일부터 첫 정기 정기연주회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노부스 콰르텟이 정기연주회 리허설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영(바이올린), 김영욱(바이올린), 김규현(비올라), 문웅휘(첼로).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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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훨씬 더 무겁죠, 훨씬.”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을 종횡무진 오가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이들에게 해외와 국내 무대 중 어느 편이 더욱 부담이냐고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동시에 돌아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선ㆍ후배로 만나 2007년 팀을 꾸리고 활동에 나선 지 벌써 13년째. 실내악 불모지나 다름 없는 한국에서 스스로를 거듭 “증명해야 했던”(김재영) 관성 탓일까. 세계적 수준으로 우뚝 선 노부스 콰르텟에게도 여전히 한국 청중은 어렵기만 하다.

노부스 콰르텟이 27일부터 ‘슬라빅(Slavic)’이라는 제목으로 2년 만에 국내 정기연주회를 연다. 잇단 해외 일정으로 지난해엔 국내 정기연주회를 갖지 못했던 데다, 새 비올리스트가 합류한 후로는 첫 정기연주회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12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리허설에 한창인 김재영(34ㆍ바이올린), 김영욱(30ㆍ바이올린), 김규현(30ㆍ비올라), 문웅휘(31ㆍ첼로)를 만났다.

‘슬라빅’이라는 제목에서 일부 알 수 있듯 이번 연주회는 동유럽, 그 중에서도 체코 작곡가들 작품이 중심이 된다. 드보르작의 현악4중주 7번,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쳐 소나타’, 스메타나의 현악4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 등 세 곡을 선보인다. 무대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들로, 노부스 콰르텟 역시 이들 세 곡을 무대에 올리는 건 처음이다. 김재영은 “체코 작곡가들의 작품을 자주 연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새 감정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주제로 정했다”며 “민족성은 같지만 저마다 다른 색을 띠는 작곡가들의 특징을 어떻게 살릴지 많은 논의를 하며 연습 중”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고 흔치 않은 것을 뜻하는 라틴어 ‘노부스(Novus)’의 의미대로 이들은 ‘가장 익숙한 곡’에 만족하지 않고 늘 도전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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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노부스 콰르텟이 정기연주회 리허설을 하고 있다. 김재영(바이올린), 김영욱(바이올린), 김규현(비올라), 문웅휘(첼로).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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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 나간 비올리스트 이승원의 자리를 채운 김규현 역시 한예종 출신으로 나머지 셋과 친구 사이다. 10대 때 만나 벌써 30대에 접어든 노부스 콰르텟은 공연을 앞두고 많게는 일주일 내내, 하루 대여섯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한다. 독주와 달리 한음한음 조화가 중요한 데다, 오케스트라보다 각 연주자의 실력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 무대 아래선 여느 30대 청년과 다를 바 없다는 이들은 “친구와 함께 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술, 연애, 농담 코드가 잘 맞아 그나마 버틸 수 있다”며 웃었다.

노부스 콰르텟은 이번 연주회 리허설 기간 프랑스, 네덜란드 무대까지 소화해야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2012년 뮌헨 ARD 국제 콩쿠르 2위, 2014년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우승 같은 기록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각국의 부름이 많아진 덕이다. 한국 실내악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니 이제는 어느 무대든 자신감으로 설 법하다. 그런데 김영욱은 조금 다른 이야길 꺼냈다. “최근에 마음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콰르텟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근본적 고민 때문에요. 어느새 다시 음악에 집중하는 스스로를 보고 초심을 되찾긴 했지만 쉬운 무대는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거듭된 고민 속에서도 현악4중주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음악의 맛이다. 김재영은 “음악하는 이들 전부가 인정할 정도로 현악4중주는 팀을 유지하기 참 어려운 장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인지 마치 두껍고 어려운 책을 완독했을 때의 보람처럼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남다른 깊이를 맛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김규현도 “주변에서 콰르텟을 이만큼 계속 이어가는 것에 놀라워한다. 작품을 높은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어려운 길을 헤쳐오는 과정 속에서 노부스 콰르텟의 음악과 마음은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졌다. “올해 들어서 ‘감사한 마음’을 자각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저로선 큰 성과예요. 연주자로 무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너무 한정적인데, 첼로를 하는 사람으로서 또 콰르텟으로서 이렇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죠.” 문웅휘가 말하자 김재영, 김영욱, 김규현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스 콰르텟의 ‘슬라빅’ 공연은 27일 광주를 시작으로 서울, 경북 포항, 울산 등지에서 열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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