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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가질 수 없는 앵무새' 소유욕 부추기는 업자 손에 넘겨준 환경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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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유역환경청, ‘멸종위기종 앵무새’ 상업 목적 수입 허가 파문

상업적인 거래 엄격히 제한

국제협약에 등재된 ‘사이테스 I’

업체 “원하는 대로 수입” 홍보

개인·동물원 사육하면 스트레스로

쉽게 질병에 걸리고 자해하기도

잘못된 조치, 즉각 철회·회수를

세계 곳곳에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야생동식물 중 상업적 목적의 국제거래가 엄격히 제한돼 있는 종들이 있다. 바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사이테스)’ 부속서 I에 등재된 생물들이다. 코뿔소, 코끼리 같은 대형 동물부터 동물원에서 인기가 높은 레서판다, 지능이 높고 사람 말을 따라할 수 있는 회색앵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사이테스 부속서 I에 속한 동식물은 극히 예외적으로 동물원 전시 및 과학적 연구 목적의 거래만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의 국제거래를 엄격히 제한하는 국제협약을 무시하고, 그릇된 소유욕을 부추기는 일이 최근 국내에서 벌어졌다.

15일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은 한 동물판매업체가 최근 사이테스 부속서 I에 속한 앵무새 9마리를 상업 목적으로 수입하도록 허가했다. 수입된 앵무새는 회색앵무, 더블옐로아마존, 옐로네입아마존 등이다.

경향신문

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보호했던 국제적 멸종위기종 회색앵무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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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앵무새들을 수입한 업체는 지난 7일 자체 블로그에 ‘사이테스 1급 키울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지난달 30일 스페인으로부터 인천공항에 앵무새가 들어왔다”며 “앞으로 사이테스 부속서 I에 포함되는 앵무새들을 원하는 대로 수입할 수 있다”는 내용을 홍보했다. 회색앵무 5마리, 더블옐로아마존 2마리, 옐로네입아마존 2마리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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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보호했던 국제적 멸종위기종 회색앵무 유조(어린 새)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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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유역환경청이 이 앵무새들의 수입을 허가한 것은 국제협약인 사이테스를 위배한 일인 동시에 지금까지 유지되던 국내의 국제적 멸종위기종 관리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환경부가 2014년 마련한 ‘사이테스 관련 업무처리지침’에는 수입 허가 절차에서 해당 동물이 사이테스 부속서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과 부속서 I의 경우 상업용 목적으로 수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또 부속서 I에 속한 동물 중 예외적으로 국제거래가 허용돼 있는 ‘인공번식된 동식물’을 수입하는 경우 해당 동물의 출처가 사이테스 사무국에 등록된 농장인지 반드시 확인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앵무새가 수입된 스페인에는 사이테스 사무국에 등록된 앵무새 번식 농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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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보호했던 국제적 멸종위기종 회색앵무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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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보호했던 국제적 멸종위기종 회색앵무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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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유역환경청의 잘못된 수입 허가가 이뤄진 뒤 앵무새를 들여온 수입업체가 판매를 시작하면서 이미 포털사이트에는 “사이테스 I 앵무새 입양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제한적인 국제거래가 허용된 사이테스 부속서 Ⅱ에 속한 동물들을 취급하는 한 동물판매업체 관계자는 “환경부의 이번 사이테스 I 앵무새 수입 허가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상업용으로 마구잡이로 수입해 판매하도록 허용한 것”이라며 “다른 동물수입업체들도 앞다퉈 사이테스 I 동물을 상업용으로 수입해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로 인해 국제적 멸종위기종들은 더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 밀수로 들어온 개체들과 뒤섞여 단속이 어려워질뿐 아니라 밀수 자체를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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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뒤 수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회색앵무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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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뒤 수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회색앵무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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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수입된 대형 앵무새들은 개인이 사육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해당 동물들의 고통도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라 전진경 이사는 “앵무새는 아름다운 모습과 사람의 말을 따라할 정도로 지능이 높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생물이지만, 수명이 길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라 사실 개인이 사육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앵무새는 개인은 물론 동물원에서 사육할 경우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해를 하기도 하고 쉽게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며 “그릇된 소유욕으로 앵무새를 사육하는 것은 인간의 폭력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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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불법 밀수업자에게서 몰수한 앵무새 알들의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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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강유역환경청은 이 같은 사실을 아직 환경부 본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환경부 담당 과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직 한강청으로부터 보고받지 못했으며 자세한 사항을 검토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전진경 이사는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기준조차 손쉽게 무너뜨리는 것은 사이테스 정신을 크게 위배하는 것”이라며 “이번에 수입 허가된 사이테스 I 앵무새들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환경부가 책임지고 회수해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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