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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기고]화평법, 본질을 들여다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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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즈음 빌 게이츠가 미국 전 대학 졸업생에게 선물한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이라고 번역’>의 저자 안나 로슬링 심층 인터뷰 기사를 읽고, 출장길에 서점에서 사서 읽었다. 저자는 사실에서 벗어난 부정적 세계관을 가지는 10가지 이유를 들면서 사람의 두뇌 인지 오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설명한다. 지식의 높낮이를 떠나 통계와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음으로써 ‘부정 본능’과 ‘공포 본능’이 생겨 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에 더 반응한다는 기사에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경향신문

최근 신문 지상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빼고, 산업용 화학물질의 수출을 제한하여 한국 제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기사들이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이다. 이 때문에 화학물질을 제조 수입하는 기업이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하여 등록 의무를 지게 하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화학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기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다. 사실충실성이 너무 떨어진다. ‘화평법’ 대상을 살펴보면 첫번째 1991년 이전에 우리 시장에 유통되고 있던 기존물질, 두번째 1991년 이후에 개발되어 시장에 나온 신규물질, 세번째가 앞으로 연구·개발을 통해 시장에 나올 신규물질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기존물질과 신규물질은 국내에서 제조, 수입하여 우리 국민이 제조자로, 유통업자로, 사용자로 있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인해 국민과 사회와 국가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화평법의 핵심 의무인 화학물질을 어떻게 안전하게 제조, 사용할 수 있을지를 평가하자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화평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산업계가 정부의 지원과 제도 개선을 제안하면 정부는 작은 소리라도 경청해 주길 바란다.

세번째 연구·개발 중인 신규물질은 화평법 시행령 11조 등록 면제 조항의 8조에 시장에 나오기 전 연구·개발용 물질은 신청만 하면 ‘면제’라고 되어 있다. 연구·개발 이후에 시장에 나올 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모니터링하기 위하여 ‘면제 신청’을 받는 것인데, 실제 비용과 시간적인 부담이 크지 않다.

지난 7월 말 국내 의약 관련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여 3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신약개발사업을 기획하여, 초기 유효물질 확보에 집중하자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기사를 들여다보면 초기 유효물질을 확보하는데, 유효물질 개발 초기단계에서 독성을 임상으로 가기 전에 스크리닝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의약품은 의도적으로 우리 몸에 넣기 때문에 독성과 부작용이 크면 안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독성 스크리닝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고, 산학연 전문가들이다. 이렇게 정부와 산업계에서 관리하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화평법 제3조 적용제외 범위에 의약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비의도적으로 사용된 많은 화학물질에 호흡기, 피부를 통해 직접 노출되고, 물, 흙의 경로를 통하여 식물, 공기 등을 거쳐 간접 노출되고 있으니 산업용 화학물질도 화평법과 같은 관리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화평법 시행으로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조금 더 안전한 사회는 만들 수 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화평법은 유럽의 신화학물질규제(REACH)를 벤치마킹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유럽시장에 수출하면서 신화학물질규제에 잘 대응하여 글로벌 최고의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성공사례도 있다. 화평법은 우리 화학산업을 궁극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칼과 같은 도구이다. 사실충실성이 부족한 주장으로 화평법의 본질이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상헌 경성대 화학안전연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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