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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세상읽기]평화경제론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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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는 혼란스러운 동북아 환경 속에서 집권 3년차를 향해 가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 일본 군국주의에서 해방된 이후 뼈아픈 동족 간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 피와 땀을 쏟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치열하게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를 건설해 왔다.

경향신문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진정한 광복의 완성은 통일에 있다. 그동안 흘린 피와 땀이 서려있는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나라, 즉 ‘원 코리아(One Korea)’를 만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45년 광복 100주년을 통일한국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뜻을 천명하였고 이를 위한 실행 비전으로 ‘평화경제’를 강조하였다. 평화경제는 분단체제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되며 주변국들이 우리의 분단구조를 정치적으로 흔드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미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불안정한 한반도 구조하에서 ‘무슨 평화타령’이냐고 비판을 하지만 평화경제는 역사상 여러 사례가 입증되어 있다.

유럽연합의 토대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승전국인 프랑스와 패전국인 독일이 평화공존과 유럽 전체의 번영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경제통합을 통한 상호의존성은 전쟁과 갈등을 억제하고 또한 평화가 보장되는 가운데에 정치, 사회적 통합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지금의 양안관계도 과거와는 다르다. 탈냉전 이후 양안관계는 군사적, 이념적인 대결보다는 인적, 물적 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정치적인 대결관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평화공존을 통한 교류는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평화경제는 일방적인 개념이 아니다. 평화의 기초가 되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주변국들의 협력,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북·미 협상의 결과가 향후 남북관계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이 되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의 주요 목적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걷어내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가운데 북한을 평화의 길로 나오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경제의 구현에 있어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과 지난 남·북·미 정상회동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서교환 등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고무된 김정은 정권은 또 다른 ‘통미배남’으로 우리의 진정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과거 북한은 체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기회를 놓친 적이 많다.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우리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7000만이 함께 공존하는 평화경제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지금 북한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만들어진 기회를 다시 놓치지 않길 바란다. 대통령도 이번 경축사에서 ‘불만스럽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하였다. 미사일을 쏘고 대남 비난을 하고 북·미 대화에서 빠지라는 식의 엄포는 평화와 공동번영을 바라는 우리의 소망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아닐 것이다.

평화경제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전제조건과 환경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통한 통일한국의 출현보다는 여전히 분단구조의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경제를 통한 공동체의 형성, 단계적인 통일여건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분단구조를 타파하고 함께 잘사는 통일의 토대를 쌓고자 하는 것은 역대정부 모두 추진해 온 전략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도 당장의 통일보다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선호한다. 문 대통령이 이념적 잣대에 따라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평화경제는 안보를 손 놓자는 것이 아니고 한·미동맹을 훼손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국민들을 호도하거나 우리가 할 수 없는 허황된 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늘 제약해 온 한반도의 분단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대결구조가 우리의 국론결집을 흔들고 우리 스스로 사분오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희망은 우리 스스로 흔들리지 않을 때 가능하다.

평화와 경제번영을 이루는 미래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미래 담론에 대한 건설적인 이해를 통해 맡은 바 책임과 직분을 다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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