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여적]김기림과 ‘새나라 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가자.”

문재인 대통령의 74주년 광복절 경축사의 키워드인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김기림이 해방 직후 쓴 ‘새나라 송(頌)’에서 따왔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나라를 경제 건설을 통해 새롭게 일으키자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이 시를 통해 일본의 경제보복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경제, 교량국가를 강조했다.

광복절 경축사는 3·1절 기념사, 국회 시정연설과 더불어 대통령의 한 해 연설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연설이다. 청와대는 경축사에 어떤 내용이 담겼으면 하는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여 다수가 경제에 관심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나라 송’은 광복 후 나온 문학 작품 중 경제건설을 얘기한 게 있으면 찾아보자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발굴했다고 한다.

김기림은 한국문학에서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이전의 시들이 감상주의·허무주의 일색이었다는 판단 아래 건강하고 명랑한 ‘오전의 시’론을 내세웠다. 그래서 그의 새로운 시는 기차·비행기·화물차 등 근대적 사물을 다루면서 밝고 건강한 시각적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돼 이후 사망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1988년 해금 조치 전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과 작품은 볼 수 없었던 ‘사라진 시인’이었다. 보성고 동문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이상은 “암만해도 성을 안 낼뿐더러 누구를 대하든 늘 좋은 낯으로 대하는 타입”이라고 그를 평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는 시가 자주 인용된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시인 출신이기도 하지만, 책 읽기를 즐기는 대통령의 취향이 반영된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신동엽·이해인·박노해·나태주 시인의 시가 인용됐다. 너무 감성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품격 있는 시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하는 게 나쁠 리 없다. 광복 직후 시인들은 좌우익을 불문하고 해방의 감격과 새롭게 건설될 국가에 대한 희망을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문 대통령은 그때의 새 나라와 지금의 새 한반도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박래용 논설위원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