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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책 큐레이팅하고, 공생하고…독립서점 2.0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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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매달 테마를 정해 큐레이션하는 서점 `어쩌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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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으로 출간된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브로드컬리)라는 책이 있다. 술이나 커피를 파는 서점, 디자인 스튜디오를 겸하는 서점, 일대일 상담제로 운영하는 서점 등을 인터뷰해 책을 팔아 먹고사는 '극한직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의 마지막 질문은 뼈를 때린다. "돈 벌려면 서점 하지 말라는 말에 동의하는가?"다. 다수 응답은 '그렇다'였다.

2010년대 중반, 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독립서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기가 있었다. 다수가 3년차라는 '죽음의 계곡'을 통과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소위 전국구 유명 서점이었던 북티크 서교점·논현점, 북바이북 상암·판교점, 서촌 가가린, 사적인서점 등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 '힙스터의 도시' 서울에서 살아남거나 새롭게 문을 연 서점이 있다. 독립서점 2.0 시대에 그들의 생존 비결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공연장이 즐비한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 최근 명소가 생겼다. 망원동 '어쩌다 책방'이 혜화동에 연 북카페 '어쩌다 산책'이다. 지하 1층, 서점 입구의 중정에는 교토 료안지를 보는 듯한 일본식 정원이 있다. 곱게 쓸어놓은 자갈 위에 바위가 놓여 있고, 단풍나무까지 심어져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카페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서점, 우측에는 팝업스토어가 운영된다. '어쩌다 산책'은 큐레이션 서점이다. 흔한 신간과 베스트셀러 매대가 없고, 출간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매달 하나의 주제로 선별된 책들이 판매된다.

"매달 하나의 주제를 정해 산책합니다. 산책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잡아두기 위해 메모를 하거나 공상의 시간을 보내듯 이곳에서의 시간은 목적 없이 무용하며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8월의 테마는 '사물들'이다. 박현택의 '오래된 디자인'을 "박물관에서 마주친 오래된 사물들을 디자인의 언어로 쓴 책"이라고 소개하고, 조경란의 '사물들'을 "50개의 사물들을 소설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책"이라고 권한다.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숨어 있다.

서울 서촌에는 10㎡(약 3평)짜리 작지만 특별한 서점이 지난 7월 생겼다. '한권의 서점'은 이름처럼 매달 한 권의 책만 판다. 고급 숙박 예약 플랫폼인 스테이폴리오에서 만든 이곳에서는 매달 1일마다 이달의 책을 골라 전시한다. 7월에는 '도쿄의 디테일', 8월에는 '매일의 빵'을 선정했다.

서점을 지키는 황지원 담당자는 "여러 책을 큐레이션하기보다 한 권만 골라 전시와 함께 소개하니 독자들이 더 특별하게 책을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달에는 '도쿄의 디테일'에 어울리는 '서촌의 디테일'이라는 연관 전시도 열었다"면서 "지난달 책은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3차 주문을 했을 정도다.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은 3평 정도가 딱 적당한 크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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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마다 이달의 책을 정해 한 권만 파는 서점 `한권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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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이 있는 서점이라고 해도 '독립서점 잔혹사'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는 "5년 임대 계약을 잘해서 버틸 수는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좋아하는 동네 서점 가가린이 사라지면서 안타까웠다. 언젠가는 서점을 만든다면 동네와 호흡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개성이 강한 서점이지만, 한 권의 책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생존 비결은 '동거'다. 신촌 기차역 앞을 지키던 '위트앤시니컬'은 치솟는 임대료 등의 이유로 지난해 11월 대학로로 이주했다. 1953년 문을 연 '문화재급' 서점 '동양서림'의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2층으로 옮겼다. 원래 창고와 사무실로 쓰이던 이곳을 새 단장하고, 1000권 넘는 국내외 시집으로 채웠다. 유희경 시인은 "신촌의 '단골손님'은 이사를 오면서 잃었지만, 다시 대학로의 '단골손님'을 얻었다. 4층에서 2층으로 내려온 것만으로도, 손님이 오히려 늘어난 편이다. 동양서림을 찾았다가, 2층에 들러 시집을 사는 손님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동업자를 들이면서, 동양서림도 큰 변신을 했다. 학습지와 잡지 등 일반도서를 줄이고 매달 선별한 책을 늘리는 큐레이션을 강화한 것. 한강, 구병모 등 작가와의 만남 행사도 매달 열고 있다. 지난 17일 밤, 김연수의 '시절일기'의 북토크를 유희경 시인은 명물이 된 회전계단에 앉아 진행했다. 25명의 독자가 들어서면 꽉 차는 동양서림은 책을 낭독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서울의 명소가 되고 있는 독립서점들은 이제 다른 업종과 함께 공생하는 공간도 많아졌다. 대규모 자본의 힘으로 탄생하긴 했지만, 지역적 특성을 서점에 접목시켜 명소가 된, 성수동 성수연방의 '아크앤북', 한남동의 '스틸북스' 등이 대표적이다. 잔혹사는 계속되지만, 이렇게 독립서점들은 꿋꿋하게 생존을 도모하는 중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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