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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고발 남발시대…年11만건중 절반은 불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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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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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정치권 등이 제기한 의혹만을 문제 삼아 사안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나 단체가 특정인을 고발하는 일을 법조인들은 흔히 '신문지 고발'이라고 부른다. 범죄 혐의가 엉성한 신문지 고발이 속출하면서 수사기관이 불필요하게 피의자를 조사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피고발인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수사력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들은 "고발을 당하면 바로 피의자가 되는 검찰 규칙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1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8년) 검찰에 접수된 고발 사건은 매년 11만건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이 커지면서 진보·보수단체를 표방하는 곳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범죄 혐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일단 고발부터 하는 행태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들은 "신문지 고발의 고발장을 보면 대다수는 범죄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도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매년 고발 사건 중 50% 정도는 검찰 조사 후 '혐의 없음' 등으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고발 대상에 대해 아무런 검토 없이 입건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고발된 사람은 특별한 법률 검토 없이 피의자 신분이 되고 강제수사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엔 이런 명시적인 규정도 없다. 다만 법무부령인 검찰사건 사무규칙 제2조와 제4조에서 '검사는 고소·고발 사건을 수리(受理)하고, 사건사무 담당 직원은 시스템에 입력하고 고소·고발사건관리부에 해당 사항을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에 고발되면 그 대상은 피의자가 되고 사건번호(형제번호)가 부여된다는 뜻이다. 검사가 사건을 각하할 수 있지만 이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도 입건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검찰 간부들은 "선진법 체계를 갖춘 국가에서 고발만으로 피의자 신분이 되는 곳은 한국과 일본 정도"라고 지적한다. 고발만으로 피의자를 만드는 게 형사사건의 보편적인 절차는 아니라는 얘기다.

또 검사들은 "보통 시민들은 피의자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사에 대한 압박감을 상당히 느낀다"며 고발에 따른 인권침해 우려를 지적한다. 한 형사부 부장검사는 "고발된 사람은 수사 경과도 알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기소 가능성으로 불안에 떨어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고발 내용이 엉성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급을 다투는 경우가 많지 않아 3개월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피의자가 되면 불기소 처분 전까지 입는 신분상 피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기업인 중에는 피의자가 돼 혹여 출국금지라도 당하면 기업 활동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형사 변호사는 "피의자 신분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고발된 혐의 외에 별건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크다고 한다. 한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고발된 건은 별개 아니더라도 검찰이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다른 혐의를 적용할까 걱정하는 의뢰인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검찰에선 신문지 고발을 업무 과중의 한 원인으로 지적한다. 근거도 없이 고발한 사건을 불기소 처리하려면 우선 피의자에 대한 소환조사 또는 서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서둘러야 할 다른 사건들 처리가 늦어지고 당사자들도 그만큼 피해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형사부 검사들은 "고발된 사람을 자동으로 피의자로 전환하도록 한 사무규칙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 검찰 간부는 "궁극적으로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검사가 형사 입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고 형사부의 업무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직 검사장은 "고발인에게도 '수사를 개시할 정도의 범죄 혐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를 법령에 명시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종원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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