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과거사 `청산` 대신 `정리`…DJ의 결단이 한일관계 매듭풀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DJ 서거 10주기 ◆

매일경제

18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이승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된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DJ)서거 10주기를 맞아 'DJ·오부치 공동선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8년 김 전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체결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2차 세계대전 후 한일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고 이후 일본 내 한류 문화 확산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DJ를 추모하며 당시 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새겼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한일 관계는 지금과 비슷하게 '최악의 국면'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말로 일본과 감정적으로 충돌했고 일본 정치인들은 역사, 영토 문제와 관련해 망언을 쏟아내며 한국을 자극했다. 일본 정부는 DJ정부 출범을 한 달 앞둔 1998년 1월 23일 한일 어업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 복원'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했다. 외환위기 극복이 당시 새 정부에 가장 큰 과제였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 협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김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인 '햇볕정책' 성공을 위해서도 일본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미·일 3국이 밀접하게 협력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다케시타 노보루 전 일본 총리에게 "남북 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밀접히 강화하는 것이 한국 국익에 부합된다"고 말했다.

물론 일본도 한국과 관계가 개선되기를 원했다. 당시 일본은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과거사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한국의 지지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매일경제

1998년 10월 도쿄를 국빈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왼쪽)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공동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매경DB]


1998년 4월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가 양국 관계 진전를 위한 협상에 뜻을 함께한 이후 양국 실무진이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이때도 과거사 문제가 최대 장애물이었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측 실무진은 일본을 향해 과거사를 '청산'한다고 하기보다는 '정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했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했다. 그 결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21세기 한일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아래처럼 명문화할 수 있었다.

'21세기 한일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고 돼 있다.

김 대통령의 일본어 통역을 맡았던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라는 보고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부터 외교정책의 상세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무진은 그 기조에 따라 실천 방안을 잘 준비하기만 했다. 대개는 참모와 실무 조직이 성안한 내용을 대통령이 받아서 자신의 정책으로 삼는데 이 경우에는 순서가 거꾸로 바뀐 셈이었다. 따라서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크게 보아 김 대통령 자신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실제로 김 대통령은 일본 문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당장 일본에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기보다는 일본이 자발적으로 '정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파트너로 삼았고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했다.

최은미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의 의의와 한일관계' 보고서에서 "과거사 문제는 단기적 해결이 아닌, 중장기적 관리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사안임을 한일 양국 모두 인정하고, 조급한 해결보다는 단계적·점진적 접근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는 정치·경제적 관계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투트랙'의 원래 의미는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기에 위안부 등 역사 문제를 그냥 둘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한일 간에 바퀴를 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DJ·오부치 선언은 결코 쉬운 문제만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DJ가 일본 문화 개방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했듯 문재인 대통령도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DJ·오부치 공동선언에 대한 의미는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하고 또 같은 해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그 의미가 일부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양국이 지금처럼 정면충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욘사마' 열풍으로 대표되는 '한류 붐' 등으로 양국 교류는 유례없이 활발해졌다.

[김기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