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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철도 외길 40년 ‘기차가 온다’ 펴낸 배은선 송탄역장 “손기정 선수도 경의선열차 타고 베를린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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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철도고 입학, 박사까지…120년 철도 역사는 우리 문화

‘기차 도시락’ 등 다양한 이야기 한 권에 담아낸 ‘철도교과서’

번영과 화해의 철길 됐으면

경향신문

배은선 송탄역장이 지난달 20일 철도박물관에서 저자 강연회를 열면서 자신의 저서를 보여주고 있다. 코레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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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기차가 온다>는 완행으로 왔지만, 그 반응은 ‘KTX급’으로 빨랐다. 코레일의 배은선 송탄역장(55)이 이 책을 완성하는 데 걸린 기간은 39년이다. 그는 1980년 국립철도고교에 들어가면서 철도를 접했다.

처음 만난 철도고 교사는 철도를 ‘사양산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처음 철도에 입문한 젊은이에게는 충격이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철도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희망을 봤고, 오히려 철도를 더 사랑하게 됐다. 철도를 더 배우기 위해, 더 알기 위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 국민의 ‘철도교과서’를 한 권 만들어낸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평생 일하고 공부해온 철도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집필작업에 나선 것은 2018년 봄이다. 이때부터 그동안 모은 자료를 정리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일반인들이 철도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철도의 120년 역사에서부터 기차 안에서의 군것질까지 ‘철도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철도는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기차도시락 등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를 책에 담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차도시락’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1년 이전이다. 기차도시락은 1922년 4월부터 1923년 3월까지 1년 동안 60만개 이상 팔렸다. 배 역장은 “하루 평균 1660개가 넘는 도시락이 기차 안에서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면서 “변천을 거듭한 기차도시락은 갈비와 불고기 등 고급 식자재를 만나면서 1만원대의 식사로까지 발전했다”고 말했다.

배 역장은 꿈이 하나 있다. 태평양전쟁과 분단, 냉전의 여파로 70년 넘게 멈춰 있는 한반도종단열차가 하루빨리 운행을 재개해 유럽까지 가는 것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기차로 베를린까지 갔어요. 다시 그런 시대가 와야 합니다. 늘 그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배 역장은 책에서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 가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손 선수는 1936년 6월4일 오후 3시30분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륙횡단 여정을 시작한다. 손 선수가 탄 기차는 같은 날 오후 11시49분 한반도의 끝이자 손 선수의 고향인 신의주에 도착한다. 당시 신의주역에는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기차는 중국, 러시아, 폴란드 등을 거쳐 같은 달 17일 베를린 프리드리히역에 도착한다. 서울을 떠난 지 13일 만에 대륙을 관통해 독일에 다다른 것이다.

배 역장은 “그 옛날 손 선수가 기차를 타고 갔던 경의선은 남북의 노력으로 다시 연결되면서 2007년 시험운행까지 마쳤다”면서 “지난날 대륙으로 향하던 기찻길은 (일제의) 세력 팽창과 자원 확보의 도구였다면, 앞으로 우리가 가꿔갈 기찻길은 화해와 상호 번영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책을 낸 지 2개월도 안 됐지만, 얼마 전 2쇄를 찍었다. 그만큼 그의 책이 주는 울림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책이 ‘철도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 그리고 철도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에게 새로운 힘과 꿈을 실어주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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